[야생야화(野生野話)] ⑩사천읍성

사천읍성의 동쪽 성벽에 있는 느티나무. 옛 사연을 아는 듯 모르는 듯 수문장처럼 버티고 섰다.
사천읍성의 동쪽 성벽에 있는 느티나무. 옛 사연을 아는 듯 모르는 듯 수문장처럼 버티고 섰다.

[뉴스사천=최재길 시민기자] 집 근처에는 사천읍성이 있다. 운동도 할 겸 자주 산책을 나간다. 동쪽 성벽 위는 나갈 때마다 걷는 코스다. 성벽 아래 몸통 굵은 상수리나무와 해송 숲에 놓인 벤치는 한없이 여유롭다. 그래서 시민들의 발걸음도 잦다.

요즘 숲을 물들이는 나무들의 단풍빛이 곱다. 햇살로 피어나는 그 빛깔을 보고 있으면 아련한 감성이 돋는다. 숲의 주종인 개서어나무 노란 단풍이 절정을 맞았다. ‘바알갛게’ 물든 느티나무 이파리는 한여름 벌레들이 반쯤 식사를 해버렸다.

느티나무 단풍
느티나무 단풍

자신을 내어준 잎이 가을을 맞는 모습은 숭고하다. 시내를 바라보고 선 벚나무에 이파리가 반쯤 떨어져 내렸다. 단풍잎 사이로 도심의 실루엣이 배경을 이룬다. 회색 도심을 온기로 덧칠하는 단풍잎들! ‘스르르~’ 살랑이는 바람에 하나둘 내려앉는다. 한해의 열정을 불태우던 모성의 귀향에는 거슬림이 없다.

푸조팽나무잎
푸조팽나무잎
느티나무에 매달린 까치집
느티나무에 매달린 까치집

북서쪽 600살 보호수로 시내를 내려다보는 읍성의 수호신! 할아버지 느티나무에 매달린 까치집 주변은 온통 황금으로 빛나고 있다. 하늘 높은 할아버지의 가을 의식이 황홀하다. 그 아래 옹기종기 모여 선 팽나무와 푸조나무에도 황금빛 노을이 서렸다. 팽나무보다 커다란 열매를 듬성듬성 매달고 있는 푸조나무는 이미 잎을 많이 떨구었구나. 나무 아래를 보니 씨를 발라낸 껍질이 바위 위에 널브러져 있다. 누가 푸조 열매를 먹고 껍질을 뱉어 놓았을까? 아직 그 주인공의 실마리를 잡지 못했다.

올해 팽나무 열매는 무척이나 많이 매달렸다. 멧비둘기 한 마리 바닥에 떨어진 팽나무 열매로 배를 채운다. 야생조류의 행동치곤 너무나 평온하고 무던하다. 인류와 가까이 지낸 비둘기의 온순한 성격을 닮은 때문일 거다.

청설모
청설모

큰오색딱따구리 한 마리가 죽은 나무 둥치를 두드리고 있다. ‘낄낄낄~’ 하고 특이하게 우는 청딱따구리 소리가 귓가를 스치고 지나간다. 이때 청설모 한 마리 나뭇가지를 타고 숲을 건너간다. 개서어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던 밀화부리 떼가 화들짝 놀라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긴다. 근처 커다란 졸참나무에 있는 직박구리들은 아랑곳없이 요란한 노래를 부른다. 숲에서 볼 수 있는 새들이 생각보다 많구나. 사천읍성 같은 도시숲에서는 새를 관찰하기 좋다. 새와 사람이 서로 적응해 있기에 그만큼 거리감이 덜하다.

털머위 꽃
털머위 꽃

사천읍성이 변화해온 역사적 사연도 한번 알아보면 좋겠다. 여말선초 남해안 지역에 왜구의 약탈이 심해졌다. 조선 초인 세종 때 이곳에 성을 쌓게 된 이유라 한다. 사천읍성은 평지성과 산성이 함께 있는 구조로 왜구의 침략을 막는 군사 요충지다. 조선 중기 임진왜란을 맞아 뺏고 빼앗기는 혈투의 장이 되었다.

20세기 들어 일제강점기에 이르니 사천읍성은 철거 정책에 따라 허물어졌다. 이름도 산성공원으로 바뀌었다. 허물어진 성벽 안에 민가와 학교가 들어섰다. 주민들은 성의 돌을 빼어다 담장을 쌓았다고도 한다. 평지성이 사라지며 쪼그라든 산성공원은 뒤에 수양공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지방행정의 보루가 되었던 옛 군사기지가 공원으로 탈바꿈한 사연에는 서글픔이 녹아있다.

벚나무 너머 보이는 사천읍 풍경.
벚나무 너머 보이는 사천읍 풍경.
수양공원 풍경
수양공원 풍경

사천읍성을 사적으로 온전히 살려놓은 채 공원의 역할도 함께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힘이 없으면 내 것도 온전히 지키지 못하는 것을. 600년 수호신 느티나무는 이 모든 사연을 지켜보았겠지? 동쪽 성벽 위 장성한 느티나무는 이러한 사연을 아는 듯 모르는 듯 수문장처럼 버티고 서 있다. 어쨌든 지금의 수양공원은 시민들의 산책과 휴식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심어놓은 털머위 노란 꽃에 벌·나비를 부르는 향이 달콤하다. 눈부시게 노란 꽃향기는 늦가을의 따뜻한 위로가 된다.

식물 문화 연구가이자 산림 치유 지도사인 최재길 시민기자는 사남면 죽천 사람이다. 지리산 자락에서 오랫동안 머물다 최근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앞으로 사천의 곳곳을 걸으며 만나는 풀과 나무, 숲 따위를 이곳 ‘야생야화(野生野話)’에서 소개한다. 때로는 그의 추억이나 재미난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야생야화(野生野話)’ 소개 글-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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