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섭 시인.
송창섭 시인.

[뉴스사천=송창섭 시인] 그 사이에 겨울이 왔습니다. 온다는 말 한 마디 없이 찾아왔습니다. 냉정하다는 생각도 잠깐, 그렇게 다가온 겨울이 그저 반갑고 고맙습니다. 지난해 겨울을 맞이했던 사람들 모두가 한결같이 올해 또 다른 겨울을 맞이하는 건 아닙니다.

살아갈수록 일 년의 시간은 점점 그 길이가 짧아짐을 느낍니다. 하지만 모르는 사이에 숱한 꽃들이 피어선 지듯이 사연들 또한 그처럼 무수합니다. 아픔 기쁨 슬픔 서러움 두려움 분노 ……, 이 많은 감정들을 어떻게 다 머리에 담고 가슴으로 안아 살아갈 것인지 겨울을 맞이하는 반가움 만큼이나 무겁고 착잡합니다. 

‘겨울’이란 말은 추울 때에는 집에서 ‘머물다’라는 뜻을 지닌 ‘겻다’에서 변한 것이라 합니다. ‘겻(다)+을->겻을>겨슬>겨울’의 변천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는 주장입니다. 겨울하면 북풍한설로 사람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추위가 생사를 가늠할 정도로 민감한 서민들에게는 겨울이란 공포로 무장한 장애물입니다. 

어릴 적 우리 집 역시 난방에는 취약해 겨울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창문이나 문틈으로 들어오는 외풍은 몸을 새우처럼 오므라들게 강제했습니다. 한 번씩 나는 배앓이를 했는데 그때마다 신통력으로 치유의 영험을 발휘한 건 아버지의 두터운 손이었습니다. 촉감은 무척이나 투박했지만 배꼽을 중심으로 위아래로 둥글게 몇 번 쓰다듬으면 아픔은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아버지의 약손은 김종길의 시 「성탄제」에 나오는 산수유 열매의 효능과 닮았습니다. 

“……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熱)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 

세상과 작별한 그해 겨울, 앞서 나는 아버지를 모시고 대중목욕탕을 갔습니다. 따스한 물에 온몸을 지그시 담고는 좋아하시던 그 표정은 동심의 세상이었습니다. 정작 세신실에서 몸을 씻겨 드릴 때는 겨우 촉루(髑髏)를 면한 몸이었습니다. 그게 목욕탕 나들이의 마지막이었습니다. 손택수는 시 「아버지의 등을 밀며」에서 말합니다. 

“…… 그렇게 밀어드리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차마/ 자식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등/ 해 지면 달 지고, 달 지면 해를 지고 걸어온 길 끝/ 적막하디 적막한 등짝에 낙인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는 지게자국/ 아버지는 병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야 비로소/ 자식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신 것이었다.” 

누군가 아버지의 조건이라며 나열했습니다. “산처럼 힘세고 나무처럼 멋있고 여름 햇살처럼 따뜻하고 고요한 바다처럼 침착하고 자연처럼 관대한 영혼을 지니고 밤처럼 다독일 줄 알고 역사의 지혜 깨닫고 비상하는 독수리처럼 강하고 봄날 아침처럼 기쁘고 영원한 인내심을 가진 사람”이라고. 

아버지의 손을 놓으니 비로소 부모를 여읜 아이가 되었습니다. 아버지란 이름과 아버지의 잔상이 남아 있는 그 겨울입니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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