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삼조 시인
정삼조 시인

[뉴스사천=정삼조 시인] 가을이 깊었다. 이 11월이 기울면 2022년도 달력 한 장이 남는다는 말이 푸념처럼 떠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세월은 간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그런데, 그 세월 타령에서는 살아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최근 서울에서는 백 오십 명이 넘는 젊은이가 아까운 생을 마친 참사가 있었다. 그들에게는 당연히 세월이 의미가 없다. 그들이 삶의 뜻을 빛냈을, 이루지 못한 성취와 못다한 사랑과 사람답게 살아갈 그 소중한 시간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만 것이다. 

올해 가을은 이 일로 인해 유난히 쓸쓸하고도 슬프다. 세계 10위 안에 드는 경제력과 세계 6위의 군사력이 있으면 무엇 하나. 아무리 공교로운 일이 겹쳤더라도 대한민국의 심장 서울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눌려 죽는 일이 생겼다. 그것도 백 오십 명을 넘었다니.

이 일과 관련하여 불현듯 박인환의 시가 생각난다. 「세월이 가면」이다. 세월이 가면 잊힐 것 같아도 잊히지 않고 다시 살아나 우리 가슴을 아련하게 하는 사랑을 노래한 시다. 잊히지 않고 이 가을이면 우리 가슴에 두고두고 되살아나지 싶은 저 이태원의 참사를 더 기억하기 위해서라도 이 시를 불러내 본다. 가곡으로 불리고, 대중가요로 많이 더 알려져 낯익은 노래말일 터이나, 노래 아닌 시로 가만히 음미해도 좋은 듯하다. 삭막한 세상에서 옛사랑을 불러내는 아름다운 감성이 있다. 대중가요 가사와 약간 다른 시의 전문을 소개한다.

“지금 그 사람의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람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내 서늘한 가슴에 있건만”

박인환은 1926년에 나서 1956년에 심장마비로 서거한 시인이다. 짧은 생을 살았으나 위 시와 시 「木馬(목마)와 淑女(숙녀)」를 남겨 세인의 사랑을 오랜 세월 받고 있다. 송지영 작가의 회고에 의하면 이 시는 지은이가 급서한 해인 1956년 이른봄에 씌어졌다고 한다.

박인환, 작곡가 이진섭, 가수 나애심, 송지영 작가가 어느 대포집에서 취해 노래를 부르자는 분위기가 되었는데 박인환 시인이 즉석에서 이 시를 쓰자 이진섭 작곡가가 바로 곡을 붙이고 그것을 가수 나애심이 노래로 불렀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나애심이 아니라 테너 임만섭이 이 자리에 동석하여 노래를 했다고도 한다. 어쨌든 당대의 예술인이 모여 즉석에서 길이 대중의 사랑을 받을 명작을 탄생시킨 것이다.

이태원 참사는 이제 애도 기간도 지나고 그 장례 절차도 마무리된 모양이다. 그러나 이 일은 우리 마음 속에서 좀체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누구라도 그 자리에 갔다면 그 참사에 휘말리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인가 하는 상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일어나지 않았어야 했던 일을 되새기며 그 맑은 영혼들을 박인환 시인의 시와 함께 가슴에 새겨 본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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