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야화(野生野話)] ⑦용치마을~하늘먼당

하늘먼당 오르는 숲길
하늘먼당 오르는 숲길

[뉴스사천=최재길 시민기자] 용현면 용치마을 입구에는 작은 마을숲이 있다. 이 숲에 사는 나무는 말채나무, 개서어나무, 팽나무 등 몇 종류지만, 눈길을 끄는 나무는 쉬나무와 말채나무다. 두 나무는 이런저런 공통점이 있다. 첫째 실생활에 쓰임새가 많았던 우리의 자연유산 식물이다. 둘째 꽃이 피면 온갖 곤충들이 떼로 모여든다. 우산살처럼 둥그렇고 하얀 꽃차례가 온통 나무를 뒤덮는다.

지난여름부터 이곳의 쉬나무가 익어가는 것을 눈여겨보았다. 주황색이던 열매껍질이 말라 벌어지더니 속에서 까만 씨가 쥐눈처럼 나왔다. 예전에 이 열매로 기름을 짜서 등잔불을 켜고 머릿기름으로도 썼다고 한다. 등잔불은 선비들이 책을 읽는데 반딧불이 불빛보다 훨씬 밝았을 터다. 그러니 사람의 마을에서 생필품으로 꽤 친근한 나무였다.

쉬나무 열매
쉬나무 열매

말채나무는 말 그대로 말의 채찍을 만드는 데 썼던 나무다. 가지가 질기고 잘 휘어지니 말을 조련하는 회초리로 썼단다. 어린 가지 하나 골라 꺾어보니 무척 질기다. 겨우 꺾어서 허벅지를 때려보니 너무나 아프다. 아주 손이 매운 말채나무로구나! 그러니 말(馬)도 고분고분 말을 잘 들을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말채나무는 인류 문화의 오랜 자연유산으로 남아있다. 궁궐이나 왕릉, 마을숲 등에.

말채나무 열매
말채나무 열매

마을을 지나는데 석류가 익어 붉은 볼이 탐스럽다. 우리 가을 빛깔치곤 무척 화려하고 이국적인 열매다. 역시 고향은 이란, 인도, 아프가니스탄 쪽이란다. 붉은 볼이 터지면 더욱 붉은 씨가 쏟아져나오니, 옛사람들은 이걸 보고 ‘다산(多産)’을 떠올렸나 보다. 여성들의 예복이나 가구에 석류 문양을 많이 새기게 된 이유란다. 세상에서 사람들의 눈길을 많이 끄는 것은 인류 문화의 옷을 입게 된다. 문화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모으고 그 원류는 야생의 자연이다.

석류
석류

예전에 중학교 다닐 때 용치마을에 사는 동창이 있었다. 그때의 기억 속에 있는 오지마을! 국도에서 자동차로 10분도 채 안 될 거리지만 지금도 이곳은 오지처럼 느껴진다. 마을 위 임도에서 바라보는 사천만 바다에는 오후 햇살이 비늘처럼 가득하다. 길가에는 구절초 한 무리 피어서 가을 정서를 길어 올리고 있다. 말갛고 고운 매무새는 시린 가을 하늘만큼이나 눈부시다.

구절초
구절초

사남면 가천마을로 내려가는 고갯마루에 차를 세우고 하늘먼당 쪽 숲길로 접어든다. 길은 뚜렷하게 나 있다. 적막한 숲에 풀벌레 소리와 새소리가 가득하다. 지척에서 조그맣게 ‘도도독’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몸집이 작은 쇠딱따구리 아닐까 생각한다. 한참 올라가다가 그 실체를 알게 되었으니 소나무 가지를 두드리고 있는 쇠딱따구리다. 잘 보이지 않아 더욱 귀엽고 반가운 녀석.

키가 멀뚱하던 해송이 자리를 비켜주는가 싶더니 떡갈나무가 무리 지어 나타난다. 뻣뻣한 털북숭이 모자들이 길바닥에 옹기종기 떨어져 있다. 곁에는 도토리들이 나뒹굴고. 여태껏 다녀보면 떡갈나무는 결실이 다른 참나무에 비해 그리 좋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도 산정(山頂)에서 대가족을 이루고 살아가는 걸 보면 살림살이가 따로 있는 모양이다.

올라갈수록 땅에 떨어진 떡갈나무 도토리와 도토리집이 많이 보인다. 올해는 풍년이 들었는데 떡갈나무가 유달리 해거리를 심하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숲에 하나둘 단풍이 들기 시작한다. 눈높이를 맞춘 떡갈나무 갈잎이 털털하게 붉은 손을 내민다. 마주하는 손에도 붉은 갈물이 들 것 같다.

떡갈나무 잎
떡갈나무 잎

하늘먼당 아래 숲길이 일어서더니 두루 뭉친 바위들을 불러 모았다. 여기 기암과 때죽나무들이 어우러져 한 폭의 수묵을 펼친다. 눈길이 머물 수밖에! 산수(山水)는 가식 없는 자신을 드러내어 인류에 문예를 가르쳤다. 하늘먼당을 돌아서 내려오는 길, 숲속으로 누워 들어오는 오후 햇살에 빛의 알갱이들이 반짝반짝 피어오른다. 산 그림자가 내려앉은 용치 저수지에서 바라보는 골짜기가 고요하고 아늑하다. 가운데엔 정겨운 마을과 마을숲이 똬리를 틀었다.
 

식물 문화 연구가이자 산림 치유 지도사인 최재길 시민기자는 사남면 죽천 사람이다. 지리산 자락에서 오랫동안 머물다 최근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앞으로 사천의 곳곳을 걸으며 만나는 풀과 나무, 숲 따위를 이곳 ‘야생야화(野生野話)’에서 소개한다. 때로는 그의 추억이나 재미난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야생야화(野生野話)’ 소개 글-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