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도 알아듣는 쉬운 우리말⑫ 주거 분야Ⅱ

말과 글은 누군가가 알아듣기 쉽게 써야 한다.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는 공공언어일수록 더 그렇다. 그런데 ‘쉽게’ 라면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걸까. 이 물음에 ‘외국인이 알아들을 정도면 누구나 알지 않을까’라는 대답으로 이 보도를 기획한다. 공공 기관에서 나온 각종 안내문을 외국인들에게 보여 주며, 쉬운 우리말 찾기에 나선다. -편집자-

공문서에 사용하는 글이 쉬워야 한다는 인식을 정부에 알리고 공공언어를 들여다보며 고쳐 쓰는 일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오래전부터 해 오고 있다. 영국에서는 1979년 일어난 한 가슴 아픈 사건으로부터 ‘쉬운 영어 운동’이 시작됐다. 영국의 한 노부부가 정부에서 난방 보조금을 지원해 준다는 공문서와 신청 서식을 읽지 못해 신청하지 못했고 결국 추운 겨울 생을 마감했던 사건이다. 그 공문서와 서식이 너무나 어려운 말들로 가득해 노부부가 읽을 수 없었던 탓이었다.

당시 소비자협회에서 각종 복잡한 문서 양식을 단순화시키는 일을 하던 크리시 메이어(Chrissie Maher) 씨는, 불필요하게 어려운 공문서가 가져온 이 불행에 주목했다. 그녀는 수많은 기자가 모여 있는 자리에서, 공문서 다발을 자르며 ‘도무지 알 수 없는 글을 쓰는 정부’라며 항의했고, 이는 ‘쉬운 영어 운동(Plain English Campaign)’의 시작이 됐다. 이후, 영국 정부가 그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지난 20년간 공문서에 ‘쉬운 영어 쓰기’를 이어오고 있다.

마침 이번 연구에서도 주거 분야의 공문서를 다루고 있다. 여기서 다룰 첫 번째 문서는 진주시의 <2022년 청년 월세 지원사업 참여자 모집 공고>이다. 여기엔 불필요한 한자어가 여럿 있다. ‘청년의 주거비 부담 경감…’이란 설명에서 ‘경감’이라는 단어는 ‘부담이나 고통 따위를 덜어서 가볍게 함’이라는 뜻의 한자어인데 이 말을 쉽게 풀어서 ‘청년의 주거비 부담을 줄이고…’라 쓰면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지급 방법을 안내하는 부분에서 ‘청년이 월세(임차료) 先 납부’란 표현에서도 ‘先’은 ‘먼저’를 뜻하는 한자다. 한자를 사용하는 문화권이 아닌 외국인이나 한자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공고문의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는 ‘청년이 월세(임차료)를 먼저 내야 함’으로 고쳐 써 주면 모든 국민에게 통한다. 공문서에 쓰는 말은 ‘한글’을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필요한 경우 괄호를 씌워 보충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그러니 한자어를 꼭 써야 하는 경우라면 괄호를 사용해 친절한 설명은 보태는 것이 낫다.

‘안정적인 주거생활 지원을 위하여’란 말은 동사로 표현할 수 있는 내용을 명사 형식으로 쓴 표현이다. 이러한 표현은 조사를 넣어 쓰는 습관이 필요하다. 이를 다시 써서, ‘안정적인 주거생활을 지원하기 위하여’라고 할 수 있다.

창원시가 내놓은 <2021년 주거공간개선 가사지원사업> 안내문에서 ‘일·가정 양립을 지원하고 삶의 질 향상과 경력단절 예방’이란 표현은 문장 성분 간의 호응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어색한 경우다. 이를 ‘일과 가정 돌봄을 지원하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게 하며, 경력이 단절되는 것을 도우려 한다’라고 고치면 된다. 각 문장 성분이 요구하는 적절한 서술어를 더하고 한자어를 덜어내 이해하기가 수월해졌다. 사업 이름에 ‘가사’라는 단어도 ‘살림’ 또는 ‘집안일’로 바꾸어 쓰는 것이 쉽다.

사업 설명에서 ‘정리수납전문가 교육을 받고 자격을 이수하였으나, 해당 분야의 수요처 발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장년 여성의 일자리 창출’이란 대목은 불필요한 표현을 길게 나열해 문장이 울퉁불퉁해졌다. 이를 ‘정리 수납 전문가 교육을 받고 자격을 갖춘 중장년 여성의 일자리 창출’이라고 다듬어주면 된다. 공문서가 쉬우면 국민의 살림살이도 나아진다.

주거분야 두 번째 연구의 첫 번째 공문서 ‘2022년 청년 월세 지원사업 참여자 모집 공고’
주거분야 두 번째 연구의 첫 번째 공문서 ‘2022년 청년 월세 지원사업 참여자 모집 공고’
주거분야 두 번째 연구의 두 번째 공문서 ‘2022년 청년 월세 지원사업 참여자 모집 공고’, ‘2021년 주거공간개선 가사지원사업 안내문’.
주거분야 두 번째 연구의 두 번째 공문서 ‘2021년 주거공간개선 가사지원사업 안내문’.

 

말과 글은 누군가가 알아듣기 쉽게 써야 한다.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는 공공언어일수록 더 그렇다. 그런데 ‘쉽게’ 라면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걸까. 이 물음에 ‘외국인이 알아들을 정도면 누구나 알지 않을까’라는 대답으로 이 보도를 기획한다. 공공 기관에서 나온 각종 안내문을 외국인들에게 보여 주며, 쉬운 우리말 찾기에 나선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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