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야화(野生野話)] ①선진리성

‘생존’ 위해 식물은 곤충을, 곤충은 식물을 ‘이용’
서로 ‘윈 윈’ 하는 공진화…놀라운 무위자연의 원리
왕벚나무 곁에는 계요등, 단풍마, 방울꽃, 사위질빵
선진리성에서 되찾은 어릴 적 기억 속 ‘꽃대궐’


식물 문화 연구가이자 산림 치유 지도사인 최재길 시민기자는 사남면 죽천 사람이다. 지리산 자락에서 오랫동안 머물다 최근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앞으로 사천의 곳곳을 걸으며 만나는 풀과 나무, 숲 따위를 이곳 ‘야생야화(野生野話)’에서 소개한다. 때로는 그의 추억이나 재미난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야생야화(野生野話)’ 소개 글-

선진리성
선진리성

식물과 함께 떠돌아온 한 세월을 껴안고 고향에 들었다. 거칠게 보면 익숙하지만 섬세하게 보면 익숙하지 않은 고향길을 나선다. 두 발로 걸으면서 사천의 자연과 문화를 만나는 발걸음이다.

첫 번째 걸음은 가까운 선진리성이다. 더위는 한풀 꺾여 이마가 선선하다. 조명군총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사각형 봉분이 무거운 무덤에 들었다. 담장 밖으로 소나무 몇 그루가 무덤을 지키는 도래솔로 서 있다. 소나무는 정화의 기운을 지녔다.

조명군총
조명군총

조명군총은 1598년 10월 선진리성 전투에서 왜에 패한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 무덤이다. 추석맞이 벌초를 해놓은 높은 무덤 위로 흐린 하늘이 내려앉는다. 정유재란은 너무나 잔인한 전투였다. 활약의 증거로 코를 베어오라 했다니. 그 화는 민간인과 아이들에게도 미쳤다.

나팔꽃
나팔꽃

선진리성 쪽으로 왕벚나무 도롯가를 걷는다. 자동차로 얼마나 많이 지나친 길이냐. 걷기 운동은 우리 몸의 세로토닌 활성에 그만이라 한다. 몸과 마음에 생기를 통통 불어넣어 준다. ‘초록 초록’ 녹음을 보면서 걸으면 효과는 몇 배로 넘친다. 걸어야만 길섶에 누워있는 풀꽃을 마주할 수 있다. 저만치 이슬 머금은 나팔꽃들이 파란 나팔을 불어댄다. 풀벌레 한 무리가 화음을 넣는다. 소리가 일렁이는 물감처럼 가슴으로 번져온다.

다가가 코를 박고 카메라를 들이댄다. 가만가만 살펴보니 하얀 솜사탕 뭉쳐놓은 나팔 속의 꽃술에 박각시가 연이어 찾아온다. 날개를 얼마나 빨리 떨어야 순간 정지할 수 있을까? 그 짧은 시간 꽃술을 마주 보며 기다란 입술을 내민다. 입술은 꿀을 빨기에 최적화되었다. 형태는 기능을 결정한다지. 그런데 꽃술에 입술이 닿자마자 이내 다른 꽃으로 날아가 버린다. 꿀맛은 보았을까? 순식간에 이꽃 저꽃 툭툭 건드리고 다닌다. 이러한 박각시의 행동은 나팔꽃이 기획하고 의도한 일이다. 다른 꽃에서 온 꽃가루를 만나는 것이 훨씬 좋으니까. 이렇게 유성생식이 이루어지면 나팔꽃은 유전적 다양성을 얻는다.

이 생태계에서 다양성은 무한한 존재가치를 지닌다. 우리 사회나 조직의 생태계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박각시는 나팔꽃에 이용당한 것일까? 굳이 따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각자의 생존을 위해 식물은 곤충을, 곤충은 식물을 이용하는 것이니. 결국은 서로가 ‘윈 윈’으로 가는 이것을 우리는 공진화라 부른다. 이 얼마나 놀라운 무위자연인가?

계요등
계요등

길을 따라 선진리성 안으로 들어선다. 가득한 왕벚나무에 매미 소리 가득하다. 매미는 땅속에서도 땅 위에서도 나무의 수액을 먹고 산다. 수컷 매미는 생식을 위한 존재 이유를 내지른다. 주변이 번잡하고 시끄러울수록 그 소리는 커진다. 세상이 험악해지는 것도 이와 비슷할 거다.

단풍마
단풍마

남방계 식물 계요등 덩굴은 성벽을 타고 다닌다. 속입술 짙은 방울꽃이 오밀조밀 내려다본다. 노란 꽃 무리를 수없이 매단 단풍마도 눈길을 끈다. 반원을 그린 덩굴줄기에 수꽃차례가 잔뜩 매달려 있다. 줄기로 사위한테 지게 멜빵을 만들어 주어 이름 붙었다는 사위질빵도, 닮은 꼴 참으아리도 지척에서 마주 보고 있다. 하필 이 모두가 덩굴식물이다. 주로 숲의 가장자리에서 살아간다. 다른 것을 감고 올라야 생존에 유리하다. 그래야 꽃은 곤충의 눈에 더 잘 띄게 되고 열매는 바람을 타고 더 멀리 날아갈 수 있다. 올라타거나 기대야 하는 삶?!

사위질빵 / 참으아리
사위질빵 / 참으아리

왜성으로 지은 선진리성은 오래전부터 벚꽃 ‘공원’으로 이름났다. 시끌벅적하던 어릴 적 기억들이 또렷하게 남아있다. 이제 철이 들어 바라보니 한철 꽃대궐을 이루던 공원의 그늘이 보인다. 선진리 앞바다는 처음으로 거북선을 띄워 전투에서 이긴 곳이다. 이순신 장군 닮은 철갑선에 왜군은 혼비백산하지 않았을까? 만들어진 성벽 너머 와룡산은 무위자연으로 굽어보고 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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