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정 사천중학교 교사.
최진정 사천중학교 교사.

[뉴스사천=최진정 사천중학교 교사] 어릴 적에 어머니가 추석이나 설이 다가오면 늘 하시던 말씀이 떠오른다. ‘어떤 인간이 이렇게 귀찮은 걸 지어내서 사람을 괴롭히나?’라는 말씀이셨다.

팔남매를 기르시고 시어머니를 봉양하시면서 평생을 넉넉하지 못한 살림살이에, 자식들에게는 골고루 옷가지나 사서 입혀야 했고, 남 되도록 식구들과 같이 먹을 음식을 장만하셔야 했던 어머니의 자연스러운 푸념이셨을 것이다.

보다 싼 옷과 신발을 고르기 위해 발 디딜 틈이 없던 재래시장을 몇 바퀴 돌면서 가게마다 가격을 물어보던 어머니의 모습이 그때는 마냥 짜증 나기도 했었다.

억살쟁이 막내아들을 달래기 위한 어머니의 눈물 어린 결정이었지만, 명절마다 옷가지나 얻어 입고 신이 난 나에 비해 누나들은 옷을 사주지 않는다고 눈물이 글썽이던 모습도 가슴 짠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코로나 상황이 2년 이상 지속되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들려오는 뉴스는 연일 고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린다는 서민들의 가슴을 짓누르는 소식 밖에 없다. 지난한 긴 세월을 참고 견디며 버텨왔는데, 장사가 안돼 생업을 포기하고 길거리 노동자로 전락했는데, 실질 소득은 계속 줄기만 했는데, 고물가가 되는데 아무런 죄도 없는데, 서민들의 삶은 실업에, 고물가에 고금리의 절망적인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사회, 경제적 혼란이 학생들의 성장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생활 부적응 학생과 상담을 통해 속내를 들어보면, 부모님과 함께하는 가정생활과 경제생활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냥 부모님의 사랑과 관심만 받고 자라도 흔들리며 혼란을 겪게 되는 사춘기 아이들이, 세상일에 대한 경험이 거의 없는 아이들이 부모님과 가정 문제로 혼란을 겪는 모습을 보면, 경제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던 내 어린 시절이 생각나 너무나 안타깝고 답답한 심정이다.

‘수원 세 모녀 사건’의 비극이 세간에 떠들썩하게 담론이 되는 이때, 우리 주위에 알리지도 못하고, 심리적으로 절망감을 느낄 만큼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소년과 가족들에게 한가위 음식을 준비하지 못할 부모들은 얼마나 될지, 답답하기 그지없다. 

지금 이 시대에 겪게 되는 실업이나 경제적 어려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금 이 시대에서 실업과 경제적 궁핍은 개인의 잘잘못이 아니라고 본다. ‘내가 지금 일시적으로 어렵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어야 하고, 이웃에게 닥친 어려움에 대해 서로 공감하고 연대하며 도울 수 있는 복지정책이 더욱 단단하게 마련되어야 이 시대의 비극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본다. (며칠 전, 어려운 환경에서도 열심히 노력해 한때는 외식업계의 CEO를 꿈꾸던 친척 동생이 극단적 선택을 하였고, 상가에 남겨진 어린 세 자녀를 보며 목이 메었다.) 

2학기가 선선한 가을바람을 따라 시작되었다. 새로 시작되는 시간에는 부모님들의 생계에 따라 상처받고 눈물 흘리는 아이들이 줄어들기를 바랄 뿐이다. 다가오는 한가위에는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소박한 음식이라도 준비해 사랑을 나누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한가위 같기만 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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