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N'과 함께] 아무튼 청년 : 이영영 씨
사천YWCA 통합상담소 실장

[뉴스사천=하병주 기자] 대한민국 국민 가운데는 외국에서 들어와 내국인과 결혼하면서 국적을 취득한 이가 적지 않다. 우리는 흔히 이들을 ‘결혼이주민’이라 부른다. 오늘 소개할 <아무튼 청년>의 주인공 이영영 씨도 바로 그런 사람 중 하나다. 그는 결혼이주민 가운데는 드물게 전문 직업을 가졌다. 사천YWCA가 운영하는 가정폭력·성폭력 통합상담소의 활동가이자 베테랑 전문 상담원이다. 그의 삶을 살짝 엿본다.

이영영 사천YWCA 가정폭력·성폭력 통합상담소 실장은 자신의 상담과 업무 경험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시간을 종종 갖는다.
이영영 사천YWCA 가정폭력·성폭력 통합상담소 실장은 자신의 상담과 업무 경험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시간을 종종 갖는다.

사천 가정폭력·성폭력 통합상담소를 소개합니다

이영영 씨를 만나기 위해 찾아간 곳은 그의 일터다. 철제로 된 문을 지나 계단을 제법 오른 뒤에 다시 현관문이 나타났다. 여기서도 벨을 눌러 신원을 확인한 뒤에야 실내로 들어설 수 있었다.
 
“우리 사무실 들어오기가 쉽지 않죠? 폭력피해자나 위기에 처한 여성들이 주로 찾는 곳인데, 가끔 가해자가 찾아와 소란을 피우곤 해서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어요. 지금은 내담자가 없으니 들어와도 됩니다.”
사천YWCA 가정폭력·성폭력 통합상담소 내부 모습.
사천YWCA 가정폭력·성폭력 통합상담소 내부 모습.

실내는 조용했다. 하지만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가정폭력·성폭력 통합상담소’란 이름에서 오는 무게감 같기도 했다.

이 상담소는 2008년에 처음 문을 열었다. 그땐 ‘사천가정폭력상담소’였다. 이후 ‘사천건강가정상담소’가 되었다가 2020년부터는 ‘가정폭력·성폭력 통합상담소’란 이름을 쓴다. 앞에 ‘사천YWCA’가 붙는다는 건 운영의 주체가 이 단체란 얘기다.
통합상담소는 국비 지원도 받는 기관이다. 이름에서 짐작하듯 주로 ‘여성폭력 피해자’의 보호와 지원, 상담 일을 한다. 가정폭력, 성폭력, 아동학대, 디지털 성범죄, 데이트 폭력 등으로부터 피해 방지를 위한 다양한 지원 체계를 갖추고 있다.
 
“아주 드물게 남성 피해자도 상담하는 일이 있지만, 절대다수가 여성 피해자예요. 그중엔 저처럼 결혼이민자들도 있죠. 남들보다 어렵게 만나 결혼했으면 서로 사랑해주고 더 잘 살아야 할 텐데, 상담하다 보면 화가 날 때가 많아요. 그래도 결혼이민 여성들에겐 제가 편한가 봐요. 제 업무가 성폭력 상담인데, 그들의 가정폭력 상담은 자연스레 저한테로 넘어오곤 하거든요.”
 
가정폭력 피해 여성을 돕는 상담사가 되기까지
그렇다. 이영영 씨는 중국 길림성 출신(1981년생)의 결혼이민자다. 조선족이지만, 운영이 어렵다는 이유로 조선족 학교가 오래전 문을 닫은 까닭에 한족의 평범한 학교에서 공부했다. 그래서 우리말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그러던 2001년, 사천이 고향인 정수길(1970년·남편) 씨가 백두산 여행길에 길림성에 들렀고, 이때 큰어머니의 소개로 두 사람이 만났다. 당시 정 씨의 중국인 직장 동료가 다리를 놓아주기도 했단다. 이 인연으로 두 사람은 이듬해 결혼했다.
결혼 초기에 이 씨는 한국의 결혼이민자로 흔한 삶을 살았다. 국제 무역선을 타는 남편이 집을 오래 비우는 일이 잦았던 대신, 시부모의 사랑이 각별했다. 쌍둥이로 한꺼번에 얻은 아들과 딸의 육아도 시부모의 도움 덕에 감당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니까 뭘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나라가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너무 좋잖아요? 그때가 20대 후반이었죠. 남편은 ‘굳이 뭘 배우려 하냐’는 반응이었지만, 시부모님께서 응원해주셔서 공부를 시작했어요. 진주보건대학이 사천YWCA에 사회복지학 야간반을 개설해 준 게 큰 도움이 됐죠.”
상담 전화를 받고 있는 이영영 실장.
상담 전화를 받고 있는 이영영 실장.

이렇게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을 손에 쥔 이 씨는 처음엔 보육교사가 되고픈 마음이 컸다. 하지만 ‘배운 게 도둑질’이란 말이 있듯이, 가정폭력상담소에서 몇 년간 갈고 닦은 경험이 마음을 움직였다. ‘그래! 가정폭력 피해 여성을 돕는 삶을 살아보자.’

그는 가정폭력 상담원 양성 교육 과정을 거쳐 지금의 상담소에 정규 직원으로 일하게 됐다. 이때가 2013년 3월. 정규직 9년에 계약직 3~4년의 세월이 쌓여, 상담소에선 소장(서은경) 다음으로 풍부한 경험을 갖게 됐다. 그 짧지 않은 지난 시간에, 분하고, 안타깝고, 아찔했던 순간이 많았노라고 이 씨는 회상한다.
 
“한번은 어느 일요일에 중학생이 찾아왔어요. 보통은 상담 뒤에 개인 연락처를 주지 않는데, 그날은 왠지 주고 싶더라고요. 다음 날 저녁에 그 학생에게서 급한 연락이 왔어요. 아버지가 어머니와 자신을 심하게 때린다고. 다행히 빨리 신고할 수 있어서 더 큰 화를 면했죠. 남편이 총으로 위협한다고 해서 경찰까지 바짝 긴장해 출동한 적이 있고요. 심지어 제가 사는 아파트의 같은 동에서도 신고가 들어왔는데, 결국엔 가족 분리 조치를 했지만, 그날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해서 가슴이 떨려요.”
이영영 실장이 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모습.
이영영 실장이 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모습.

최소한 방관자는 되지 말자

이영영 씨는 직장 안에서 ‘오뚝이’로 불린다. 그만큼 어려움을 많이 겪고도 다시 일어섰다는 얘기다. 그는 경험했던 다양한 폭력 사례에서 깨닫는 점이 있다고 했다. 그것을 굳이 ‘인간에 대한 믿음이 깨진다’는 식으로 표현하고 싶진 않단다. 오히려 ‘어떤 상황이든 벌어질 수 있다’가 더 적절하다는 것. 그는 “한없이 친절을 베풀던 사람도 특별한 상황이나 변수에 범죄자로 돌변하기 일쑤”라며 다양한 상담 사례를 들려줬다. 이 씨는 그런 일을 접할 때마다 ‘흔들리지 말자’, ‘질 수 없다’, ‘내가 강해져야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다’는 말을 되새기며 마음을 다잡았단다.
 
“내가 바라는 거요? 정시 퇴근이죠! 일의 특성상 밤낮 구분이 없거든요. 그리고 퇴근 뒤에 피해자와 그들의 사연이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낮에 상담한 일이 계속 맴돌아 저를 힘들게 하는 면도 있지만, 결국은 그런 일이 우리 주위에서 끊임없이 일어난다는 얘기잖아요. 제발 그런 일이 사라지거나 줄어들기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거죠. 요즘 성폭력 사건이 부쩍 늘고 있는데, 이런 사실을 시민들이 다 안다면 아마 깜짝 놀랄걸요? ‘이게 우리 동네에서 일어난 일이 정말 맞아?’ 하고 말이죠.”
 
그는 자신의 상담과 업무 경험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시간도 가끔 갖는다. 일종의 교육이나 특강을 하는 셈이다. 그럴 때마다 꼭 강조하는 게 있다. 가정폭력이든 성폭력이든, 가해자도 피해자도 되지 말자는 것. 여기에 한 가지 더! ‘최소한 방관자는 되지 말자’고 강조한다. 경찰에 신고하거나 상담소로 연락만 해주어도 더 큰 가해와 피해를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영영 씨에 관한 탐색이 끝나갈 무렵, 문득 잊고 있던 사실에서 새 궁금증이 떠오른다. “중국에서 우리말을 못 배웠다고 했는데, 어찌 이렇게 잘하세요?” 수줍은 웃음부터 돌아왔다.
 
“에이, 아녜요. 아직 모자라죠. 업무차 회의를 하거나 다른 기관과 협의를 할 때면 휴대폰에 종종 기대게 돼요. 저는 상대가 방금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찾아보는 건데, 다른 사람들은 딴짓한다고 오해할 때가 가끔 있죠. 그때마다 우리말을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심지어 저를 향해서도 결혼이주민이라는, 색안경을 낀 듯한 눈빛이 느껴질 땐 더욱 그래요.”
상담소 간판 앞에 선 이영영 실장.
상담소 간판 앞에 선 이영영 실장.

청년을 나이로 가른다면 그 경계는 어디일까. 한적한 시골에선 60대도 청년 소릴 듣는다지만, 정부 정책에 견주면 대략 만 39세까지다. 그렇다면 마흔 줄에 들어선 이영영 씨는? 그 기준이 어떠하든 오늘만큼은 청년으로 불러주고 싶다. 온갖 폭력으로부터 사천을 지키는 ‘오뚝이 사천 청년’으로!■

 

※이 글은 사천시정 소식지 「사천N」 7월호의 <아무튼, 청년> 난에 실린 기사와 같습니다. (글 제공: 사천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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