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섭 시인.
송창섭 시인.

[뉴스사천=송창섭 시인] 마음의 짐, 물질적인 짐 모두 내려놓고 주위를 살펴봅니다. 무심코 지나쳤을 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띕니다. 1년 전에 비해 걷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하루에 최소 칠천 보는 걸어야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주장에 귀가 솔깃합니다. 해질녘이면 운동장이며 논틀밭틀길, 마을 골목길, 둔치 길로 두서넛 혹은 네댓이 짝을 지어 걷는 이들을 봅니다. 특별한 복장을 갖추지도 않았으며 걸음걸이는 제멋대로입니다. 하루 일을 마무리하고 오롯이 자신만을 위해 가지는 숭고한 시간입니다. 이웃 벗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재깔거리고 웃음꽃을 피웁니다. 장운동을 하며 소화도 시키고 땀을 쏟아 몸과 마음의 찌꺼기를 걸러냅니다. 석양 아래 익어 가는 곡식과 몸집을 키우는 가지와 오이, 복분자 열매를 만납니다. 나들이가 주는 즐거움은 든든한 삶의 밑천이 됩니다. 

빛이 사라지는 저녁 무렵이면 쏟아진다는 호르몬이 있습니다. 척추동물의 뇌 속 솔방울샘에서 분비한다는 멜라토닌이 그것입니다. 나이가 지긋해지면 깊은 잠을 못 이루고 자다 깨다를 되풀이하는 증상이 나타납니다. ‘수면 분절 현상’이라는 것으로 원인은 수면 유지와 관련한 멜라토닌의 생산과 분비가 감소하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수면 불충분에 따른 후유증을 해소하는 데에도 걷기는 긍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길과 부딪혔을 때의 감정을 떠올립니다. 낯선 지역에 가서 겪는 상황들은 이상하고 어색하며 당혹스럽기까지 합니다. 새로운 길이 내포한 상징성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자주 다녀 익숙한 길도 이따금 낯선 장면으로 다가옵니다. 이런 순간에 직면하면 스스로 이방인이 되었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한번이라도 친숙한 것들과 이별을 하거나 이별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자신에게 질문합니다. 친숙한 것과의 헤어짐이라니 덜컥 겁부터 납니다. 거듭 고민을 해도 실타래 엉키듯 심정은 복잡해지는데 답변하기가 수월찮습니다. 친숙하다는 말은 애정을 동반합니다. 사랑의 감정 없이 지속적으로 만남을 이어가기란 어렵습니다. 육안으로 분별하기 힘든 미세한 조각일지라도 사랑의 감정이 묻어 있다면 그 위력은 예상을 훌쩍 뛰어넘습니다. 삶에서 친숙한 것들을 떼어 내기가 고통보다 버거운 이유입니다. 여기에도 길을 걸으며 숙고해야 하는 당위성이 있습니다.        

길을 걸을 때 나는 가끔씩 자기 최면을 겁니다. 심리적 소용돌이에 나를 빠뜨리고 또 나를 건져 내는 작업입니다. 한약재나 차를 만들 때의 구증구포처럼 그와 유사한 몸부림이라 해도 괜찮겠습니다. 거침없이 찌고 말리고 나 자신을 흘렸다가 줍고 움켜쥐었다가 무자비하게 흔들고 자유분방하게 흩뿌리는 ‘홀로 전위 예술’을 하는 셈입니다. 그러면 길은 낯선 타인의 모습으로 다가오고, 나는 마침내 이방인의 옷을 입고 길 위를 마음껏 방랑할 수 있습니다. 초록색을 비롯한 무수한 알록달록한 발자국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튀김옷을 입혀 깨끗한 기름으로 튀긴 음식은 정갈하고 고소한 맛이 납니다. 낯선 길 역시 지금껏 걸어온 길과는 다른 풋풋한 맛을 풍기며 꼿꼿이 부대낄 것입니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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