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2022 쉬운 우리말 쓰기 : 외국인도 알아듣는 쉬운 우리말⓷ 의료 분야 Ⅱ

말과 글은 누군가가 알아듣기 쉽게 써야 한다.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는 공공언어일수록 더 그렇다. 그런데 ‘쉽게’ 라면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걸까. 이 물음에 ‘외국인이 알아들을 정도면 누구나 알지 않을까’라는 대답으로 이 보도를 기획한다. 공공 기관에서 나온 각종 안내문을 외국인들에게 보여 주며, 쉬운 우리말 찾기에 나선다.  -편집자-

“한국어는 조사가 가장 어려운 것 같아요. 조사가 많이 있는 문장도 어렵지만 조사가 없는 문장은 더 어려워요.”

이 연구에 참여하는 아일랜드 사람 오언 씨의 넋두리는 그가 외국인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번 기획에서 의료 분야의 두 번째 자료로 살펴본 두 개 공문서에는 한국인도 어려워할 만한 몇몇 표현들이 있다. 전문 용어나 한자어가 조사 없이 나열되거나, 조사를 지나치게 여러 번 사용한 대목이다.     

질병관리청 누리집에 실려있는 원숭이두창 관련 안내
질병관리청 누리집에 실려있는 원숭이두창 관련 안내

먼저 질병관리청이 누리집에 실은 원숭이두창의 증상과 예방을 설명한 글을 살펴보면, ‘…국가의 공중보건 위기 상황 시 사용할 목적으로 비축하고 있는 것으로…’란 문장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비축하고 있는 것으로’가 어색하다. 

여기서 반복된 조사 ‘으로’를 하나 뺀다고 해서 의미가 완전해지지 않으므로 문맥 전체를 아울러 고쳐야 한다. 이에 주의해 문장을 다듬으면 ‘…국가의 공중보건 위기 상황 시 사용할 목적으로 비축하고 있기에…’로 쓸 수 있다. 고친 문장에서도 여전히 명사의 나열로 구성된 점은 꼬집어 볼 수 있다. 따라서, ‘상황’, ‘비축’을 쉬운 말로 바꾸고, 다시 전체를 풀어서 ‘…국가의 공중보건이 위험할 때 사용할 목적으로 준비해 둔 것이기에…’로 표현하면 쉽다.

다음으로 들여다본 ‘E형 간염 예방수칙 안내문’에서도 조사의 쓰임이 올바르지 않아 문맥이 매끄럽지 않은 문장들을 여럿 볼 수 있는데, 그중 하나를 살피면 ‘위생적인 조리하기’라는 표현이다. ‘위생적인’은 관형어로서 명사를 꾸며주는 역할이니 뒷말로는 동사에서 온 명사형 ‘조리하기’보다는 ‘조리’가 더 어울린다. 반대로 ‘조리하기’에 무게를 두려면 앞말을 바꿔 ‘위생적으로 조리하기’로 쓰면 더 쉽겠다. 영국에서 온 에이든 씨가 크게 공감한 부분이다. 

‘환자의 혈액이나 체액으로 오염된 옷, 침구류, 감염된 바늘 등이 사람의 점막, 피부 상처 등 접촉 감염’이란 문장에서도 조사가 지나치게 생략됐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내용을 이해하려면 한참을 다시 읽어야 한다. 이를 ‘환자의 혈액이나 체액으로 오염된 옷과 침구류, 감염된 바늘 등이 사람의 점막이나 피부에 난 상처에 접촉하면서 생긴 감염’이라고 고치면 훨씬 부드럽다.

E형 간염의 예방수칙을 담은 안내문.
E형 간염의 예방수칙을 담은 안내문.

 

또 다른 문장, ‘바이러스 치료제는 없지만 충분한 안정 등의 증상을 완화하기 위해 실시하는 치료법으로 대부분 회복이 가능’이란 표현은 어떤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인지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중국에서 온 이영영 씨는 “미리 공문서를 받아 몇 번이나 읽었지만 ‘충분한 안정 등의 증상’, ‘완화’, ‘실시’ 이런 단어들만 나열돼 있고 설명으로 다가오지 않아 내용을 알기가 너무 어렵다. 그냥 충분히 쉬면 낫는다는 말이냐”고 물었다.

이 씨의 물음에 따라 되짚어 보면 ‘충분한 안정 등의 증상을 완화하기 위해 실시하는 치료법’이란 말은 결국 ‘충분한 안정을 취하면’ 혹은 ‘충분히 쉬면’이란 말을 복잡하게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바이러스 치료제는 없지만, 충분히 쉬면 대부분 회복이 가능’이라고 고쳐 쓰니 무겁고 복잡하던 의미가 간결하고 명확해졌다. 우리 공공언어도 무거운 단어를 내려놓고 사뿐사뿐 가벼운 단어로 채워가면 어떨까.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