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남강댐 사천만 방류에 정부 책임을 묻다 ②

남전1리…장묘시설 받고 두메산골이 ‘햇살마을’로
정규 일자리 15개…모든 조합원에 월 10~23만 원 수당
지원금을 종잣돈 삼아 태양광 발전 등에 투자해 성과
주민들, 갈등 딛고 ‘모두가 행복한 마을’ 위해 노력

 

국가의 정책으로 졸지에 남강 물벼락을 맞게 된 사천시. 50년 넘는 설움은 오늘도 끝날 줄 모른다. 오히려 더 큰 물벼락의 위험이 눈앞이다. 지방자치 시대에 국가가 한 자치단체에 이렇듯 일방적 부담을 떠안기는 게 온당한가. 앞선 공공사업의 사례에서, 남강댐 인공 방류의 피해 지역인 사천시에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할 역할과 책임을 짚는다.

[뉴스사천=하병주 기자] 국가든 자치단체든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부 희생을 치르면서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지방자치제가 제대로 자리 잡기 전까지는 공공과 다수의 이익만 강조하면서 소수의 희생에는 애써 눈을 감는 경우가 많았다. 그 소수가 항의라도 할라치면 서슬 퍼런 공권력을 동원하면서, 사회적으로는 ‘님비 현상’이라며 공격하곤 했다.

님비(NIMBY)는 ‘내 뒷마당에서는 안 된다’는 뜻의 영어 ‘not in my backyard’를 줄인 말로, 지역 이기주의를 뜻한다. 심한 악취와 소음을 일으키거나 안전을 위협하는 시설, 이 밖에 주변의 땅값을 떨어트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만한 시설을 ‘혐오시설’이라며 꺼리는 현상이다. 전통적 혐오시설에는 쓰레기 매립장이나 소각장, 의료 폐기물 처리장, 화장장이나 장례식장, 가스 저장 시설 등이 있다.

하지만 이젠 세상이 바뀌었다. 국민 저마다의 행복추구권이 강조되는 분위기 속에 아무리 공익을 위한 사업과 시설이라도 국가나 자치단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는 얘기다. 지난 기사에서 소개한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줄여 방폐장) 사례가 대표적이다. 누구든지 부담스러워하고 꺼리는 사업이나 시설이라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과 지원 대책이 뒤따라야 실행을 담보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이번에 소개할 사례도 같은 맥락이다. 원자력 발전의 폐기물을 둘러싼 국가적 논란과 갈등만큼은 아니라 하더라도, 지자체라면 한 번쯤 겪었거나 꼭 겪을 법한 일이다.

강원도 인제군은 인구 3만 명 정도의 작은 지자체다. 2000년대 초반, 인제군은 관내에 화장시설이 없음을 안타까워했다. 군민들은 가족의 장례를 위해 멀리 속초시나 춘천시, 원주시에 있는 화장시설을 이용하는 불편을 겪었고, 화장시설을 못 갖춘 군은 그때마다 적지 않은 화장 지원금을 지출해야 했다.

인제종합장묘센터 입구 간판
인제종합장묘센터 입구 간판

이 같은 불편을 없애고자 인제군은 화장시설을 포함하는 종합 장묘시설(인제종합장묘센터: 하늘 내린 도리안)을 갖추고자 했다. 그러나 7곳의 후보지 가운데 어느 곳의 주민도 이를 흔쾌히 받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강한 반발에 부딪혀야 했다.

2004년 무렵, 그 후보지 가운데 한 곳이던 남면 남전1리의 주민들 사이에 작은 기류 변화가 생겼다.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교통이 불편하고 벌이가 부족한 마을에 변화를 줘 보자는 생각이 움트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장묘시설 유치 의견으로 발전했다. ‘장묘시설을 유치하는 대신 마을 발전 지원금을 받아 주민이 떠나는 마을에서 돌아오는 마을로 만들어 보자’하는 거였다.

그러자 한편에선 강한 반발이 일었다. 장묘시설로 마을의 인상과 느낌이 안 좋아지면, 그나마 마을주민의 주 생산물인 농산물과 임산물의 판로가 막히거나 값이 내려갈 것이란 걱정에서였다. 집값과 땅값 떨어질 걱정도 함께였다. 양쪽 모두 마을을 위하는 마음이었지만, 방법론에선 크게 엇갈린 셈이었다.

남전1리에 들어선 인제종합장묘센터의 전경
남전1리에 들어선 인제종합장묘센터의 전경

이 일로 마을은 크게 둘로 쪼개졌다. 종합 장묘시설 유치냐 반대냐에 따라서다. 인제군에선 마을에 발전기금 지원을 약속하며 찬성 주민들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팽팽하던 찬반 갈등은 주민투표 끝에 ‘장묘시설 유치 결정’으로 정리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그 뒤로도 법적 분쟁이 이어지면서 양쪽의 갈등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이 무렵 인제군이 남전1리 마을에 약속한 내용은, 주민 자율 신청 사업비 50억 원과 일반 지원 사업비 20억 원의 지원이다. 마을의 골목길과 가로등 등 부족한 기반시설을 갖추는 데 일반 사업비가 쓰인다면, 자율 사업비는 주민이 원하는 일을 지원하는 데 쓰인다. 여기에 인제군은 인제종합장묘센터 내 장례식장을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게 하겠노라는 약속도 했다.

햇살마을 입구 안내 입간판
햇살마을 입구 안내 입간판

이로부터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 남전1리는 누가 보아도 고개를 끄덕일 만큼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음은 남전1리 주민들이 참여해 만든 햇살영농조합법인의 최창도 총괄사무장의 설명이다.

“처음 장묘센터 얘기가 나왔을 땐 마을에 46가구쯤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65가구가 넘죠. 세대로 치면 90세대쯤은 될 거예요. 계속 줄어들던 인구도 좀 늘었고요. 이런 산골에서 매우 드문 일입니다.”

남전1리는 ‘모두가 행복한 햇살마을’을 꿈꾼다.
남전1리는 ‘모두가 행복한 햇살마을’을 꿈꾼다.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에 인구가 다시 는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농산어촌을 살린다는 명분으로 내놓은 정책이 수두룩함에도 진정한 성공기는 드문 까닭이다. 남전1리의 변화가 궁금할 수밖에 없다.

“현재 이런저런 마을 관리 업무에 15명이 정규직원으로 일하고 있어요. 20명이 넘은 적도 있는데, 코로나19 영향 등으로 줄어든 겁니다. 직원은 모두 마을주민이죠. 장례식장 운영, 마을 펜션과 식당 운영, 레저와 특산품 개발‧판매 일을 합니다. 정규직원 외에 때때로 일용직도 쓰니까, 연간 고용 개념으로 17명은 넘을 거예요. 당연히 4대 보험 가입에 급여는 최저임금 이상이죠.”

이어지는 최 사무장의 설명은 더욱 놀랍다.

“마을 자치 기금으로 다양한 복지사업도 하고 있어요. 매달 80세 이상 조합원(=가구)에겐 23만 원, 75세 이상이면 18만 원, 그 아래로는 10만 원을 수당으로 주고 있어요. 또, 실거주 가구에는 매달 5만 원의 전기료를 지급하고, 명절이면 집집이 50~70만 원어치의 상품권도 드립니다. 이 밖에 결산 뒤 이익금이 남으면 조합원에게 돌려주는데, 지난해엔 300만 원 정도씩 나눠 줄 수 있었어요.”

설명을 직접 듣고도 믿기 어려울 정도다. 최 사무장은 꾸준한 노력 끝에 지금은 둘로 갈라졌던 마을도 하나로 돌아왔다고 했다. 종합장묘센터 유치를 계기로 지원받은 사업비를 활용해 다양한 성과를 내고 있음도 한몫했단다.

인제군 남면 남전1리는 종합장묘센터를 유치한 뒤로 ‘햇살마을’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이 마을의 최창도 총괄사무장이 그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인제군 남면 남전1리는 종합장묘센터를 유치한 뒤로 ‘햇살마을’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이 마을의 최창도 총괄사무장이 그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인제군 지원금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두고 고민이 많았어요. 좋은 성과를 내어야 주민도 다시 화합할 수 있으니까. 태양광 발전이 결정적 역할을 했죠. 군은 자율 사업비 50억 원을 1년에 5억씩 10년에 걸쳐 주고 있었는데, 2008년엔 그 5억을 태양광 설비에 썼어요. 은행 대출도 꽤 받아서 했죠. 그때 300kW 규모의 시설을 갖추고, 이후에 더 늘려서 지금은 528kW 규모입니다. 여기서 연간 3억 4천만 원 정도의 수익이 나오더라고요.”

남전1리 마을은 태양광 발전 사업을 계기로 햇살마을이란 별칭을 갖게 됐다. 마을에선 그 뒤로도 다양한 공모사업에 도전하면서 꿈을 키워가고 있다. 펜션과 식당, 교육‧체험시설을 갖춘 채 여느 체험 마을 못지않게 많은 방문객을 끌어들인다. 만병초를 이용한 기능성 상품을 개발하는가 하면, 구상나무 숲길 조성에도 힘쓰고 있다. 미래를 위한 투자인 셈이다.

오늘날 남전1리 햇살마을의 목표는 분명하다. ‘주민 모두가 행복한 햇살마을’이다. 마을 곳곳에선 이 목표를 이루려 애쓴 흔적들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주민들은 이 모든 일의 마중물로서 종합장묘센터 유치와 그에 따른 지원금이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잊지 않는다.

이렇듯 이른바 혐오시설을 받아들이는 대신 마을의 발전을 꾀하는 일은 전국에 흔하다. 반대로 공공사업을 추진하는 정부와 지방정부, 공기업 쪽에서 보면 불편과 손해를 감내하는 지역민을 배려하려 애쓰고 있음이다. 이러한 일이 하류 지역의 홍수 방지를 위해 인공 방류수를 뒤집어쓰고 있는 사천시와 사천만 주민들에게는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있다. 이를 어찌 이해해야 할까.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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