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N'과 함께] 이 달의 인물 : 옥창묵 사천해양경찰서장

2022년 봄, 사천해양경찰서가 처음 문을 연 가운데, 옥창묵 초대 서장이 사천해경 함정 앞에 선 모습.
2022년 봄, 사천해양경찰서가 처음 문을 연 가운데, 옥창묵 초대 서장이 사천해경 함정 앞에 선 모습.

[뉴스사천] 바다의 기상은 늘 변화무쌍하다. 그래서 바닷일을 하는 사람들은 크고 작은 사고를 당할까 늘 걱정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칠흑 같은 어둠에도 거친 파도를 뚫고 달려와 주는 해양경찰의 존재다. 사천시 어민들은 최근 들어 마음이 더욱 편해졌다. 사천해양경찰서가 신설된 까닭이다. 이제 작은 민원 하나로 통영해양경찰서까지 가던 불편은 사라지게 됐다. 옥창묵 초대 사천해양경찰서장을 만나 사천해경에 관한 여러 궁금증을 풀었다.

4월 15일 사천해양경찰서 개서식 모습.
4월 15일 사천해양경찰서 개서식 모습.

영광스러운 그날

2022년 4월 15일 낮. 사천시청을 비롯해 창원지법 사천시법원, 진주세무서 사천지서 등 행정기관이 몰려 있는 곳 주변으로 많은 인파가 몰렸다. 국사를 책임지는 국무총리까지 참석했으니, 꽤 큰일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큰일은 곧 사천해양경찰서의 개서식이었다.

이날 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사천해양경찰서의 출발을 축하하면서 “사천·남해·하동·고성 앞바다를 잘 부탁한다”고 했고, 이에 정봉훈 해양경찰청장은 “어민 보호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답했다. 정 청장의 답은 옥창묵 사천해양경찰서장의 답이기도 했다.

사천해양경찰서는 개서식이 있기 보름 앞인 3월 31일부터 업무에 들어갔다. 이날 옥 서장은 사천해경 탄생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새기며 직원들을 격려했다.

4월 15일 사천해양경찰서 개서식 모습.
4월 15일 사천해양경찰서 개서식 모습.

“존경하는 사천해양경찰서 직원 여러분! 저는 오늘 사천해양경찰서 초대 서장으로 취임해 서부경남 해역의 안전을 향한 여정을 여러분과 함께하게 된 것을 한없이 기쁘고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중략) 사천해양경찰서는 사천시, 남해군, 하동군, 고성군 지역민들의 염원이 청원 되어 정부와 국회에서 신설의 필요성을 공감해 탄생했습니다. (중략) 앞으로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분들이 마음 놓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합시다.”

- 옥창묵 서장의 취임사 일부 -

사천해양경찰서가 만들어지기까지

사천해양경찰서 신설은 지역민과 어업인들의 오랜 바람이었다. 민원 업무를 보기 위해 멀리 떨어진 통영해양경찰서를 찾아가는 불편이 있었고, 해양 사고가 발생해도 거리상의 문제로 구조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기 때문이다.

이 오랜 바람은 사천시의회가 2019년 2월에 사천해양경찰서 신설을 촉구하는 대정부 건의문을 채택하면서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2000년엔 전국시군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도 비슷한 내용으로 건의문을 발표했다. 이런 가운데 사천해경 신설에 속도가 난 건 지난해 3월부터다.  해양경찰청이 직접 나서 정부에 신설을 건의한 것이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9월 사천해경 신설안을 확정했다.

 

옥 서장이 해안치안상황도 앞에서 설명하고 있다.
옥 서장이 해안치안상황도 앞에서 설명하고 있다.

“보는 것처럼 아직은 어수선합니다. 사무실 집기도 덜 갖춰져 있고. 좀 썰렁하죠? 지역민의 염원을 고려해 급하게 준비하다 보니 미흡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국회가 사천해양경찰서 신설에 필요한 예산을 통과한 게 12월 3일이니까, 문을 열기까지 넉 달이 채 안 걸린 셈이죠. 이 건물도 임대로 구한 거고요. 언젠가 청사를 짓는 날도 오겠지만, 당분간은 여기서 일하게 됩니다.”

 

옥 서장은 국회에서 관련 예산이 통과되던 날 사천해양경찰서 신설 추진단장으로 임명된다. 그는 “청사와 전용 부두를 확보해야 해서 상당히 부담스러웠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단한 영광이었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렇게 탄생한 사천해양경찰서는 254명의 인력에 6과, 1팀, 1구조대에 3개소의 파출소를 두고 있다. 함정 6척, 구조정 4척도 보유하고 있다.

반면에 사천해경 관내에는 어선 4,458척, 낚시어선 397척, 여객선 5척, 유람선 8척, 도선 10척, 수상레저기구 740여 대, 국가중요시설인 화력발전소 3개소, 양식장 600여 개소 등이 있다. 이밖에 수시로 드나드는 화물선과 유조선도 있다. 관할 구역은 사천의 해역 전체와 남해, 하동, 고성, 통영의 일부 해역이다.

사천해경 함정에 올라 직원들을 격려하는 옥창묵 서장.
사천해경 함정에 올라 직원들을 격려하는 옥창묵 서장.

 

“사천해경 관할 구역의 특징은 통영 못지않게 낚시어선과 레저 보트가 많다는 점입니다. 또 제주를 오가는 여객선과 유람선 등은 불특정 다수인이 이용하게 되는데, 문제가 생기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어요. 발전소라는 국가중요시설이 있어서 테러에 대비한 해상 경계 임무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옥 서장이 궁금하다

사천해경에 관한 궁금증을 어느 정도 풀었으니, 옥창묵 서장 개인에 관한 정보도 살펴야겠다. 그는 1966년생으로 거제가 고향이다. 거제에서 초·중·고교를 다녔다. 특히 거제수산고는 그를 해경으로 안내한 매개체나 다름없다.

 

“2학년 때였을 거예요. 동네 형이자 선배가 해경 제복을 입고 학교에 왔는데, 너무 멋있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해경이 되어야겠다!’하고 마음먹었죠. 알고 보니 해경이 되면 군 복무 대체가 된다더군요. 지금은 아니지만, 그땐 그랬어요. 안정적인 직업이 되겠다 싶어서 더 마음이 끌렸던 것 같습니다.”

 

옥 서장은 스무 살이던 1985년에 해경이 되었다. 본청 총무계장, 동해해양경찰서 정보과장, 해양경찰교육원 교무과장 등을 지냈으며, 남해지방해양경찰청에서 기획운영과장으로 근무하던 중 사천해경 신설 추진단장을 맡게 됐다.

그는 해경으로 근무하면서 보람이 아주 컸던 순간으로 ‘신풍호 사건’을 떠올렸다. ‘신풍호 사건’은 2005년 6월 1일 자정을 조금 지난 시간에 어선인 신풍호가 해류에 떠밀려 일본의 배타적 경제 수역(EEZ)으로 넘어가자 일본의 해상보안청이 나포를 시도했고, 우리의 해양경찰이 이를 저지하면서 서로 대치했던 일이다. 양국 경비정 13척이 투입된 동해상의 대치는 33시간 만에 풀렸다.

옥창묵 초대 사천해양경찰서장이 사천해경 함정 앞에 선 모습.
옥창묵 초대 사천해양경찰서장이 사천해경 함정 앞에 선 모습.

“제가 울산해경 해상안전과에 안전관리계장으로 일할 때예요. 대치가 이틀째 이어졌는데, 이 상황이 거의 실시간으로 중계되면서 국민의 관심이 무척 컸습니다. 양국의 정부 협상 끝에 결국은 우리가 데려왔지요. 많은 국민이 ‘울산해전의 승리다’ 그랬는데, 현장에 있진 않았지만 정말 통쾌했던 순간이에요.”

 

끝으로 그는 사천에 대한 인상이 무척 좋다고 했다. 특히 “어족자원이 풍부해서 그런지 다른 곳보다 수산물 값이 싼 것 같다”며, “이미지 홍보에 적극 활용하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이 글은 사천시정 소식지 「사천N」 6월호의 <이달의 인물> 난에 실린 기사와 같습니다. (글 제공: 사천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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