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의 반란, 인간의 무덤덤
상태바
쓰레기의 반란, 인간의 무덤덤
  • 송창섭 시인
  • 승인 2022.06.29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송창섭 시인.
송창섭 시인.

[뉴스사천=송창섭 시인] 현대인이라 자처하는 우리는 이미 달과 화성 탐사를 거쳐 그 너머의 우주로 영역을 확장시키며, 이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 개발로 첨단 과학이 낳은 ‘불편한 자긍심’을 갖고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가까운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걱정거리가 산재해 있음을 발견합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이 쓰레기 문제입니다. 지금 우리의 삶은 하루라도 쓰레기를 배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시공간을 막론하고 인간과 쓰레기가 함께 가야 하는 운명공동체가 된 것입니다. 

거리를 지나다 보면 우리는 도처에서 나뒹구는 쓰레기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를 보면서 에둘러 피하듯이 스쳐갑니다. 마치 쓰레기와 자신은 무관하다는 듯 경계하며 혐오감을 표출합니다. 기피하고 등지면 그만인가, 걱정과 고민의 흔적은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루 24시간을 보내면서 입, 손, 똥구멍 등 내 몸을 거쳐 버려진 것들이 과연 얼마나 되는지 헤아려 본 적이 있을까요?  

‘쓰레기’란 쓸모없게 되어 버려야 할 것들을 통틀어 가리키는 말입니다. 달리 오물, 찌꺼기, 오예물, 폐기물로 부르기도 합니다. ‘쓰레기’란 낱말은 ‘쓸다(소掃)’와 관련이 있습니다. ‘쓸다’는 ‘한쪽으로 몰아 치우거나 모으다’의 의미를 가졌던 ‘’에서 온 말입니다. 월인석보에는 “  오 노오."가 나옵니다. “깨끗한 땅을 물 뿌려 쓸고 높은 자리를 만들고.”라 풀이합니다.

’는 빗자루로 비질을 하여 한쪽으로 모아 놓다, 라는 의미로 먼지나 티끌 또는 쓰다가 망가져 쓸모없게 된 것들이 처리 대상입니다. ‘쓰레기’란 ‘쓸다’의 명사형이었던 ‘쓸어기’가 변형한 것으로 이는 못 쓰게 된 조각을 가리켰습니다. 결국 쓰레기란 더럽고 하찮으며 쓸모가 없는 부정적인 이미지의 물건을 뜻합니다.

 쓰레기의 탄생 배경과 의미를 헤아려 보면 쓰레기는 애초부터 버림받아야 할 숙명을 지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 하여 무한정 쓰레기를 양산하는 행위가 바람직한가, 라는 질문에는 회의적입니다. 까닭은 인간들의 철저한 이기심과 과도한 욕망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미래로 향할수록 편리함을 좇습니다. 1회용 물품 사용 급증과 과소비 행태가 이를 뒷받침합니다. 간편하게 쓰고 버리면 그뿐이라는 편의주의 인식에 오염되어 있습니다. 인간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무수한 쓰레기들로 난잡합니다. 다른 동물들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현상입니다. 내가 버린 쓰레기로 남이 어떻게 되든 개의치 않습니다. 자연이 병들고 마침내 지구, 우주가 궤멸해 가든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더러움을 보고 지적질은 할 줄 알아도 스스로 더러움을 줄이려는 노력은 하지 않습니다. 인간인 ‘나’만 깨끗한 척하면 그만이라는 독존(毒存) 의식이 팽배합니다. 인간이 토한 교만 방자함이 암흑천지를 낳고 있습니다. 

초록별 지구는 쓰레기 덩어리로 변모하는데 열병의 원흉인 인간은 자성은커녕 무덤덤합니다. 그 사이에 더 이상 숨쉴 수 없는 날은 다가오고 있습니다. ‘나’부터 쓰레기를 줄이는 작은 실천이 인간쓰레기라는 오명을 벗고 지구의 건강성을 되살리는 거보(巨步)가 되어야겠습니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블라인드
댓글을 블라인드처리 하시겠습니까?
블라인드 해제
댓글을 블라인드 해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