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삼조 시인.
정삼조 시인.

[뉴스사천=정삼조 시인] 송강 정철이 강원도 관찰사를 지낼 때 백성들이 올바른 삶을 살도록 가르치기 위해, 꼭 필요한 도덕의 요지만을 추려 쉬운 우리말로 지은 훈민가(訓民歌)가 옛날 국어책에 수록돼 있었던 기억이 새롭다. 형식이 시조로 되었는데 모두 16수다. 기억에 남는 것은 그 맨 처음 한 수다. 시경(詩經)에 실려 있고, 기본 도덕책이라 할 명심보감에도 있는 내용을 시조 형식으로 바꾼 것이다. 요즘 말로 옮겨 보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
두 분 곧 아니시면 이 몸이 살았으랴
하늘같이 끝없는 은덕 어찌 다 갚사오리”

위 시조에서 당시 의미를 몰랐던 부분은 ‘아버님 낳으시고’였다. 아이는 어머니가 낳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던 까닭이다. 요즘에서야 아, 그때 그 뜻은 아버지의 기운으로 아이가 어머니 배 속에 한 생명으로 자리잡게 되고, 어머니는 그때부터 아이를 키우는 것이구나 하고 짐작하고 있다. 그러니 사람은 어머니 배 속에서 이미 한 살을 살고 세상에 나온 것이다. 태교(胎敎)라는 말도 여기에서 생겼을 것이다. 아이를 배 속에서 기르고 있으니 혹시라도 아이에게 나쁜 영향이 미칠세라 아이를 가진 여성은 마음가짐 몸가짐에 특별히 더 마음을 썼던 것이다. 

이 나이셈법은 아마 우리의 독특한 고유문화가 아닐까 한다. 고유문화란 밥과 김치처럼, 또 한복과 온돌처럼 오랜 세월에 걸쳐 대대로 전해져 오는 것인데 사람들 마음속에 오래 자리한 이것을 하루아침에 없앨 수는 없다. 과거 한때 정부에서 신정(新正)이라 하여 양력 1월 1일 설을 쇠게 강제한 일이 있었다. 사람들은 아무리 그래도 전통적인 설인 음력 1월 1일 구정(舊正)을 쇠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설날 학교에 갔으나 공부가 제대로 되지 않던 기억이 생생하다. 

문화적 전통은 금지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없어질 것이라면 저절로 사람들에게서 자연스레 사라지게 되어있다. 나이셈법 이야기로 하자면 지금도 공식적으로는 현재 연도에서 태어난 연도를 빼고 생일의 경과 여부를 따져 최종적으로 나이를 정하는 만 나이를 쓰는 것으로 안다. 그러니 민간에서 태어나면 한 살, 설 쇠면 한 살씩 보태는 셈법은 그냥 두어도 아무 불편이 없을 일이라 생각된다. 언젠가 살다 보니, 이 나이셈법이 저절로 그 존재 이유를 상실하는 일이 생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만의 이 독특한 나이셈법은 대대손손 이어져가리라 믿는다. 어머니의 뱃속에 생긴 그 생명의 씨앗을 두고도 인격을 부여할 줄 알았던 생명 존중 사상을 가진 민족이 우리 민족이다. 갓난아이를 두고, 영 살이니 몇 개월 되었느니 하는 것보다야 한 살이라고 불러주는 것이 훨씬 더 사람대접을 제대로 하는 것 같지 않은가. 

그러다 설을 쇠게 되면 세상 모든 사람과 똑같이 한 살을 더하게 된다. 설을 쇠었다는 것은 새해를 맞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나고서 몇 번이나 설을 쇠게 되었느냐 하는 횟수에 어머니 배 속에 있던 한 살을 더한 것이 나이가 된 것이다. 물론 섣달그믐날에 태어난 아기는 다음날 설을 쇠게 되니 난 지 하루 만에 두 살이 되었다고 우스갯소리 비슷하게 이 셈법의 모순점을 지적하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어쩌랴. 모든 것이 제 타고난 복인 것을.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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