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섭 시인.
송창섭 시인.

[뉴스사천=송창섭 시인] 4월입니다. 어느새 피었던 목련이 지고 매화꽃도 끝물입니다. 노란 유채꽃이 화사하고 벚나무는 흐드러지게 벚꽃을 뽐내다가 산들바람에 무수한 꽃눈을 쏟아 냅니다. 진달래가 숲속 바위틈에 숨어 분홍빛 얼굴을 은근히 드러냅니다. 언덕에 연분홍 복숭아꽃, 노란 산수유꽃도 보이고요. 흙길을 내딛는 발걸음 곁에는 쑥이 한창입니다. 부푼 마음을 싣고 봄나들이에 나선 사람들 옷차림이 한결 밝고 가볍습니다. 맑고 푸른 하늘은 무엇을 해도 좋은 시절임을 무언으로 일깨우고 있습니다. 모든 게 참 예쁘고 아름답습니다.  

이토록 멋진 계절의 시간을 아름다움으로만, 화려하게만 볼 수 없는 이들이 있습니다. 슬픔의 무게를 측량할 수 없기에 기억에 담아 두지 않고 그저 사소한 일처럼 잊으려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 땅이 낳고 이 땅의 역사가 낳은,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낳은 숱한 아픔과 상처 받은 영혼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 어느덧 여덟 해를 맞은 4·16 세월호 사건을 나는 또 다시 기억하고 있습니다.

삶과 죽음, 동전의 양면 같고 백지장 한 장 차이 같은 이 둘의 간극을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요. 서로 넘나들 수 없는 깊고 검은 강물이 격렬한 소리를 내며 흐르는 거대한 장벽처럼 느낄 때가 있습니다. 가슴 쓰리고 끔찍해서 상상하기가 불가능한 영역이라 여겼는데, 한순간에 그것이 무너져 믿기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예고 없이 들이닥친 엄청난 파문, 너무 일러서 아직은 때가 아닌데 급작스럽게 찾아온 이 낯설고 달갑지 않은 불청객은 ‘별안간 이별’입니다. 

사랑이 소멸한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빵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사랑을 잃은 육신은 이미 살아있는 몸이 아닙니다. 아무리 예쁜 꽃이라도 예쁨을 감지할 수가 없습니다. 봐도 봄이 없고 들어도 들음이 없고 먹어도 먹음이 없습니다. 무감무지(無感無智)의 빈 쭉정이만 그저 막연한 숨을 내몰고 있습니다. 하소연할 기력조차 없는데 4월은 어찌 그리 자주 다가오는지 까닭 모를 일입니다. 사랑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비록 영혼일지언정 생명력은 더 아름다울 것입니다. 몸서리치도록 슬프고 아름다울 것입니다.  

매리 프라이의 시 「내 무덤가에 서서 울지 마세요」입니다. 

“ …… 당신이 숨죽인 듯 고요한 아침에 깨면
나는 원을 그리며 포르르
말없이 날아오르는 새들이고
밤에 부드럽게 빛나는 별입니다
내 무덤가에 서서 울지 마세요
나는 거기 없습니다. 죽지 않았으니까요”


육신의 사멸이 전부가 아님을 노래합니다. 영혼은 새가 되고 별이 되어 영원히 살아 있음을 알립니다. 영혼의 불멸이 참된 진리요 영혼의 사랑이 실제 가치임을 선언합니다. 

누구든 이별을 거부하지 못합니다. 다만 이별의 과정과 순간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 문제는 여전히 논란거리입니다. 삶의 지혜와 정의를 판가름하는 열쇠를 인간 스스로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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