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N'과 함께] 아무튼 청년 : 김종필 씨
한국연극협회 사천시지부장 & 극단 장자번덕 사무국장

[뉴스사천] 극단 장자번덕. 연극과 공연으로 사천시민들의 마음에 살을 찌우는 연극단체이자 문화예술단체이다. 몸집은 작지만, 대한민국연극제에서 단체 대상을 차지하는 등 실력은 여느 극단에 뒤처지지 않는다. 장자번덕 단원들의 헌신과 꾸준함 덕이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이가 김종필 씨다. 10대라는 어린 나이에 단원이 된 그는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한국연극협회 사천시지부장으로서 사천의 연극계를 이끌고 있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춤추게 한 것일까?

김종필 한국연극협회 사천시지부장은 “장자번덕에서 오래도록 연극 하는 게 꿈”이라고 말한다.
김종필 한국연극협회 사천시지부장은 “장자번덕에서 오래도록 연극 하는 게 꿈”이라고 말한다.

극단 장자번덕과 연극 새내기의 만남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TV와 영화관마저 설 자리를 위협받는 마당에 아직도 극단이 있단 말이야?’ 누군가가 이렇게 되묻는다고 해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겨우 11만 명 정도의 인구에, 생활권역도 세 모둠으로 흩어져 있는 사천시의 현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문화 불모지’라는 말이 자격지심도 되고 비아냥도 되는 사천에서 극단 장자번덕이 25년째 살아 숨 쉬고 있음은 그만큼 대단한 일이다.

장자번덕의 오늘을 있게 한 이는 누가 뭐래도 이훈호(58) 대표이다. 1998년에 극단을 창단할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연극으로 세상과 소통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장자번덕에서 중심을 지켜 왔다.

그런 장자번덕과 이 대표에게 어느 날 새파란 연극 새내기가 찾아왔다. 새내기보다는 악동? 악동보다는 괴물? 어쩌면 동지나 친구가 더 적절한 표현일 수도 있겠다. 그가 바로 한국연극협회 사천시지부(=사천연극협회)의 김종필(29) 지부장이다.

김 지부장은 김해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어려서부터 대중 앞에 나서기를 좋아했던 그는 고교 2학년에 이르러서야 연기를 배워야겠다고 굳게 마음먹었다. 그렇게 창원에 있는 태봉고로 전학을 감행(?)했다. 태봉고의 연극반이 끌렸던 까닭이다. 이곳에서 김 지부장을 지도한 이는 서용수 교사. 그는 현재 거창연극고등학교의 교장이다.

김 지부장은 당시 서 교사의 소개로 장자번덕과 인연을 맺었다. 이때가 2011년이다. 이듬해인 2012년에는 열아홉의 나이로 장자번덕에 입단했다. 그가 배우로 참여한 <있는 그대로>라는 작품이 제16회 경남청소년연극제에서 단체 최우수상을 받고, 이어 전국청소년연극제에서도 단체 우수상 등 4관왕을 휩쓸 무렵이다. 그는 이때 우수 연기상을 받았다.

2013년 제31회 경남연극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 '호접몽' 의 한 장면.
2013년 제31회 경남연극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 '호접몽' 의 한 장면.

연극을 잘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연극을 오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장자번덕과 처음 인연을 맺었을 때가 2011년입니다. 그해에 장자번덕이 대한민국연극제에서 단체 대상(=대통령상)을 받았어요. 정말 작은 극단인데, 대단하다고 생각했죠. 그러면서 더욱 관심을 뒀어요. 이때만 해도 배우로서 연기를 잘하고 싶은 욕심이 컸는데, 장자번덕이 제 욕심을 채워 줄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입단했죠.”

어린 나이였지만 연극에는 진심이었다. 서울역에서 노숙까지 하면서 한 해 동안 본 연극이 300편에 가까웠다. “연극은 힘든 일이다, 배우는 배고픈 직업이다.” 주위에서 이런 말이 쏟아졌으나, 그땐 귀에 들어오지 않았단다. 되레 연기를 어떻게 더 잘하고, 삶을 어떻게 더 잘살까가 고민이었다.

그렇게 연기에 열정을 불태우던 시간이 훌쩍 지나, 군 복무 기간이 다가왔다. 그는 군에서도 연극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운명처럼 찾아온 연극 경연대회에 1인극을 만들어 출전했고, 참모총장상을 받았다. 군에서 연극을 향한 마음을 더욱 키운 그는 전역 후에 다시 장자번덕으로 돌아왔다.

“제대할 무렵엔 생각이 조금 바뀌더라고요. ‘연기를 어떻게 잘할까’에서 ‘연극을 어떻게 오래 할까’로 말이죠. 답이 바로 보이데요. ‘장자번덕이다!’ 했죠. 역시 중요한 건 ‘사람’ 같아요. 진정성으로 똘똘 뭉쳤고, 가식이나 거짓이 없고, 꾸준함이 대명사인 분. 바로 이훈호 대표님이죠.”
 

2017년 제35회 경상남도연극제의 개막작인 '옥수동에 서면 압구정동이 보인다'의 한 장면. 오른쪽 배우가 김종필 지부장.
2017년 제35회 경상남도연극제의 개막작인 '옥수동에 서면 압구정동이 보인다'의 한 장면. 오른쪽 배우가 김종필 지부장.

장자번덕의 살림꾼이 되다

2016년에 장자번덕으로 복귀한 그가 곧장 맡은 임무는 사무국장이라는 자리였다. 사무국장은 곧 살림을 사는 자리로, 떠밀려 맡았다기보다는 직접 나서서 맡았다. 이 대표를 돕고 싶은 마음, 장자번덕의 운영 여건을 더 낫게 하려는 마음, 결국엔 극단의 살림을 튼튼히 해 연극을 더 오래 하고 싶은 마음의 발로였단다.

그는 그때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장자번덕이 너무 좋은데, 이러다간 나 말고 아무도 안 남고, 안 오는 거 아냐?’

낯선 업무를 열심히 하려니 연기로부터는 멀어졌다. 그래도 보람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겼다. 각종 사업계획이나 공연계획을 세워 성과를 거둘 때의 기분이 연극 무대가 끝난 뒤 커튼콜에서 얻는 감동에 못지않았다는 얘기다.

그가 더 야무진 기획자가 되겠노라 마음을 먹은 건 2017년이다. 이훈호 대표가 경남연극협회장을 맡자 사무차장으로 협회 업무에 결합하면서다. 2019년엔 경남연극제와 청소년연극제의 기획을 맡기도 했다.

“경남의 다른 극단을 보니 우리가 얼마나 열악한 상황인지 알겠더라고요. 우리는 좋은 작품을 만드는 데만 너무 힘을 썼던 거죠. 그것도 ‘작업터’ 느낌으로, 팀을 일회성으로 끝내는 경우가 많으니, 사람도 작품도 잘 남지 않았어요. ‘남는 건 무대와 의상 소품’이라며 푸념하기도 했죠. 더 들어가면 대표님과 다툰 이야기가 많으니, 이 정도만 얘기할게요(웃음).”

극단 장자번덕 로고.
극단 장자번덕 로고.

누구나 연극을 손쉽게 즐길 수 있기를

스스로 ‘가장 존경하는 분’, ‘아낌없이 받기만 했다’, ‘지금의 나를 만든 스승’ 등의 표현으로 이 대표를 향한 경의를 한껏 드러냈으면서도, 극단의 운영 방향이나 업무에 있어선 의견 충돌도 심심찮았나 보다. 극단의 살림꾼, 사천연극협회의 통솔자로서 줏대나 패기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극단 장자번덕과 함께한 김종필 지부장은 사천에서  오랜 인연을 더 이어가고 싶어 한다. 각산 입구를 걷는 김 지부장.
고등학생 시절부터 극단 장자번덕과 함께한 김종필 지부장은 사천에서 오랜 인연을 더 이어가고 싶어 한다. 각산 입구를 걷는 김 지부장.

김 지부장은 코로나19로 얼룩진 지난 2년을 돌아보면서는 한숨부터 지었다. 이 한숨엔 관객을 직접 만나지 못한 데 따른 배우로서의 아쉬움과, 암울한 시기를 무사히 넘긴 데 따른 살림꾼으로서의 마음 놓임이 같이 묻어났다. 끝으로 그가 바라는 연극에 관해 물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연극을 오래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택한 게 장자번덕이죠. 그리고 지금은 연기보다 기획자로 힘을 쏟고 있어요. 상주 단원을 10명쯤 갖춘 탄탄한 극단으로 만들고 싶어요. 소극장이나 연습실도 있어야겠죠. 시민들 누구나 손쉽게 연극에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꿈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지금은 ‘장자번덕’ 하면 ‘이훈호’를 떠올리지만, 언젠간 저 ‘김종필’도 함께 떠올리는 시간도 오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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