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삼조 시인.
정삼조 시인.

[뉴스사천=정삼조 시인] 비 구경한 지 여러 달 만에 단비가 내리는 것 같다. 언뜻 듣기로, 우리 사는 지역이 몇십 년 만의 겨울 가뭄을 겪고 있다는 말도 들리고 때늦은 추위와 가뭄 때문에 식물의 생육이 보름 정도 늦어졌다고도 한다.

이런 때에 반가운 비가 내리니 옛날 국어책에 나왔던 『두시언해(杜詩諺解)』 중 「춘야희우(春夜喜雨)」가 생각난다. 『두시언해(杜詩諺解)』는 당 현종 때의 시인 두보의 시를 1481년(성종 12) 우리말로 번역 간행한 책인데 그중 몇 수가 교과서에 실렸던 것이다. 봄날 모처럼 만물을 자라나게 할 봄비를 기쁘게 맞이한다는 제목이 붙었고 내용도 그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천몇백 년 전의 중국 사람이나 지금 우리나라 사람의 심정이 별 차이가 없을 것이기에 우리나라 15세기 말로 된 것을 요즘 말로 고쳐 소개해 보고자 한다. 모처럼 맞는 봄비를 반기는 마음을 즐겨 보았으면 한다. 원작자의 한시 형식이 율시(律詩)이니 모두 여덟 줄이다.

“좋은 비 시절을 아니
봄을 맞아 (만물을) 베풀어 나게 하는구나
바람을 좇아 가만히 밤에 드나니
사물을 적시며 가늘어 소리 없도다
들에 길에는 구름이 다 어둡고
강 배에는 불이 홀로 밝도다
새벽 붉은 젖은 땅을 보니
금관성에 꽃이 많이 피었겠구나”

하늘과 들판에 가득 찬 먼지를 가라앉히듯이, 비는 또 사람의 들뜬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역할도 하는 것 같다. 개인사도 세상사도 다 같이 젖어서 땅 밑으로 스미는 듯하다. 

그동안 세상을 끝없이 달굴 것 같던 대선도 마무리되었다. 역대 대선 중 가장 근소한 차로 당락(當落)이 갈렸다는데 세상은 의외로 침착하다. 당선자는 낙선자를 위로하고 낙선자는 당선자를 축하하는 분위기다. 얻은 표가 서로 상당하기에 서로를 인정하는 것 같기도 하고 결과에 승복하며 다음을 기약하고자 하는 마음들이 느껴진다.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보다 성숙해진 것이리라. 이런 마음들이 세상 모든 동네의 골목과 골목에도 이미 전파되었으리라 믿는다. 

이제 비까지 내렸으니 만물은 제대로 자라날 좋은 때를 맞았다. 우리 마음도 그와 같으리라 믿으며 봄을 맞으며 읽을만한 시 한 편을 더 소개한다. 정인보 선생의 현대시조 「조춘(早春)」이다. 제목은 ‘이른 봄’이란 뜻이겠다. 시조 가락 속에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잘 살린 시로 알려져 있다. 1929년에 발표되었다. 선생은 독립운동과 후학 양성에 힘쓰시다 해방 후 광복절 삼일절 개천절 제헌절 노래를 작사하셨다. 1893년에 나셔서 1950년 전쟁 때에 납북되셨다. 이 시조는 모두 3연인데 여기서는 2연까지 소개한다.

“그럴싸 그러한지 솔빛 벌써 더 푸르다.
산골에 남은 눈이 다산 듯이 보이고녀.
토담집 고치는 소리 볕발 아래 들려라.

나는 듯 숨은 소리 못 듣는다 없을쏜가.
돋으려 터지려고 곳곳마다 움직이리.
나비야 하마 알련만 날개 어이 더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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