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재작년 늦가을 지리산 자락 숲속 체험을 다녀 온 이후부터

짬짬이 산을 찾게 되었습니다.

머릿 속이 복잡하거나 그냥 '멍'때리고 싶을 때, 산행만큼 좋은 것도 없더군요.

 

처음에는 집 뒷산부터 올랐습니다.

그러다 맛을 들여 거제의 이름 난 산 몇 군데도 가 보게 됐구요.

미친 척 하고 새벽에 출발해 지리산 천왕봉을 당일 코스로 다녀 오기도 했죠.

 

지난 토요일에는 삼천포의 각산을 다녀 왔습니다.

삼천포는 평소 오토바이를 타고 수차례 지나 다녔고 가족들과 어시장 구경도 두 어번

갔었지만 이번처럼 마음 먹고 찾은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각산은 해발 398미터로 4개 등산 루트가 있습니다.

제가 올랐던 사천문화예술회관 코스는 정상까지 50분 가량 소요되는, 어렵지 않은 코스였습니다.

 

출발점에서 약수터까지는 약 1킬로미터 거리입니다. 

문화예술회관을 벗어나 산길에 들어 서기 전 만나게 되는 나무입니다. 

 

멀리 화력발전소가 보입니다.

저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흰 연기로 인해 삼천포에 대한 제 인상이 결정돼 있습니다.

 

1년 365일 흰 연기를 뿜어 대겠죠?

평소에는 볼 수 없는 광경이라 그런지 자꾸만 뒤돌아 보게 됩니다.

무슨 괴물같기도 히고......ㅎ

 

오른쪽 아래 빨간 네모가 예술회관.

 

자연의 색깔은 참 조화롭습니다.

한겨울 산은 온통 황토빛, 파란 하늘을 인 나무는 회색이거나 갈색빛으로 뿌연 녹색을 띤 이파리를

달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만들어 낸 색이라는 것도 어쩌면 자연에서 본 그것을 무의식이나마 재현해 내는 게 아닐까요?

 

황토색은 자극적이지 않고 눈을 편하게 해줍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거기 있었던 나무와 흙.

비록 빼어난 비경은 아니지만 감동이 옵니다.

 

쉬엄쉬엄 산을 오르다 보니 어느새 약수텁니다.

 

한겨울임에도 물은 차지 않았습니다.

빨간 바가지에 물을 그득 담아 마셨습니다.

물에서 찰기가 느껴졌습니다.

신기하게도 말이죠.

 

약수터 왼쪽은 체육공원입니다.

그다지 높지 않아 동네 사람들이 만만하게 들릴 수 있겠고 여러가지 운동 시설들이 잘 갖춰져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삼삼오오 무리 지어 산을 오르는 장면은 독특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저도 어릴 적 친구들과 곧장 그랬을 텐데.

그로부터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나 봅니다.

 

뒤를 돌아 봤습니다.

머리가 세개 달린 괴물은 영원히 끊지 못할 족쇄에 묶인 채 주둥이에서 허연 연기를 뿜어 대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상을 하게 된 것은, 제 속에 어릴 적 기억이 자릴 잡은 탓이겠죠?

 

다시 체육공원입니다.

훌라후프의 크기와 무게가 대단합니다.

만약 외국인이 보면 눈이 휘둥그레질 거라는 상상을 해 봤습니다.

"놀라운 한국인"이라고 외칠지 모릅니다.

 

등산로 곳곳에서는 이런 돌무더기를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어느 산이든 이런 광경은 어렵잖게 볼 수 있습니다.

뭔가를 염원하기 좋아하는 우리네 기질일까요?

 

땀을 흘리거나 건강을 위한다거나.

아니면 자연을 본 다거나.

다 훌륭한 삶의 모습입니다.

가치있는 행위지요.

 

괴물은 여전히 포효를 지르며 사슬을 끊으려 들었습니다.

계속 무서웠습니다.

 

며칠 전 내린 비로 땅이 얼었다 풀리기를 반복하며 진창으로 변했습니다.

 

얼었던 땅은 녹으면서 부풀어 오릅니다.

그래서 뻐끔뻐끔 구멍을 만들지요.

 

삼천포시내가 야트막하게 엎드려 있습니다.

 

한가지 불만이 있습니다.

등산 인구가 늘어 나며 언제부턴가 전국의 크고 작은 산은 등산로가 정비되기 시작했습니다.

등산을 마치면 흙먼지를 떨어 내게끔 압축공기 시설이 갖춰졌다든지,

아래 그림처럼 나무 계단을 만들어 놓는다든지.

사실 계단 오르는 것보다 자연 그대로의 산길을 오르는 게 더 맛이 나고 편합니다.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해서이겠지만, 가끔 사람들의 오버센스가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헬기장 부근 이정표입니다.

그림이 괜찮죠?

아니라구요?

음......무감동한 편이시군요 ㅎㅎㅎ

 

통신시설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이곳까지는 다른 방향으로 임도가 나 있겠지요.

 

마침내 삼천포 앞 바다가 보였습니다.

괴물이 좀 더 멀어졌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놓였습니다.

"녀석보다 내가 높은 곳에 있잖아요"

 

 

전망대입니다.

 

이렇게 망원경까지, 그런데 동전투입구가 없었습니다!

 

공짜라는 말입니다. ㅎㅎㅎ

 

사천시의 정성이 느껴집니다.

이번 경우는 오버센스에서 패스 *^ ^*

 

전망대를 지나 오목조목한 산길을 오르내렸습니다.

나무가 만들어 낸 땅위의 그늘은 짙은 갈색입니다.

군대의 동계 위장복이 이런 자연의 조화를 본 땄다는 건 잘 아시죠?

 

 

머지않아 낙엽들은 새 생명의 원천이 될 것입니다.

 

손을 대면 금방이라도 바스라질 것 같습니다.

이런 색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입니다.

 

느닷없이 나무계단이 나타났습니다.

 

마치 유명한 국립공원에라도 온 듯한 착각이 들었습니다.

 

 정상부근에는 작은 대나무밭과 억새풀 군락이 파란 하늘을 이고 바다를 향해 있었습니다.

 

 

 

 아래는 정상(봉수대)에서 찍은 동영상입니다.

여유있으시면 아래의 동영상도 감상~~^**^

창선대교입니다.

야경이 멋져 카메라맨들의 단골 촬영 장소이기도 합니다.

 

죽방렴도 보입니다.

멸치를 주로 잡는데 사천의 거친 물살을 거슬러 V형태로 설치된 울타리에 물고기가 걸려 듭니다.

원시적이지만 센 물살 속에 활발히 헤엄치던 물고기를 상처없이 맛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멀리 서포대교도 보였습니다.

저 다리를 건너 달리다 보면 하동이 나옵니다.

 

어릴적 울산에 살 때 집에서 조금 벗어나면 공단이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하얀 연기에 대한 강렬한 인식은 아마 그때 자리 잡았는지도 모릅니다.

 

어릴 적 울산에서의 추억 한토막.

공단 하천에는 검붉은 물이 넘실넘실 흘렀는데 아마 염색 공장 주변이었나 봅니다.

하얀 고무신을 배 삼아 놀다 그만 놓쳐 버렸습니다.

검붉은 물결에 떠내려 가는 하얀 고무신을 발을 동동 구르며 바라 보던 기억은

너무나 강렬합니다.

 

공장에 대한 저의 어릴 적 기억입니다.

무서울 수 밖에 없겠지요?

고무신 잊어 버렸다고 엄마한테 실컷 두들겨 맞았으니까요.

 

 

 

산은 아릅답습니다.

큰 산이든 작은 산이든, 유명하든 그렇지 않든.

자연이 만든 것 치고 아름답지 않은 게 어디있겠습니까? 

 

마우스 휠을 휙 드래그해도 좋지만 숨을 가다듬고 다시 한번 그림을 들여다 보세요.

 

산에 가고 싶어질 겁니다.

 

 

예로 부터 우리는 자연을 닮고 싶어 했습니다.

 

도도히 흐르는 강과 넓은 바다, 깊고 고요한 산을.

 

자연은 우리가 어떤 수식어를 붙여 주지 않아도 그 자체로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저 바라보고 느낄 뿐입니다.

 

 

주말 산행은 짧았고 운동을 했다는 뿌듯함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틀이 지나 사진을 들여다 보며 다시 한 번 감동을 느낍니다.

 

누렇게 빛바랜 이파리와 황토를 보며 감동을 느낄 수 있으니 

 

저도 인생을 헛산 게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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