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삼조 시인.
정삼조 시인.

[뉴스사천=정삼조 시인]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던 글귀가 떠오른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이천 년도 훨씬 더 전인 중국 한나라 시절에 미녀 왕소군이 메마른 북방으로 끌려가 살게 된 억울한 심정을 대신 노래한 동방규라는 시인의 유명한 시 중 한 구절이다. 이제 삼월이니 봄은 분명 오긴 했는데, 우리 몸은 추위에 아직 익숙하고 마음은 크고 작은 걱정들에 봄을 미처 느끼지 못한다. 봄은 왔으되, 아직 봄 같지는 않은 것이다.

그래도 봄은 분명히 왔다. 들판에 나가보면 민들레 같은 작은 꽃들이 눈에 적지 않게 띈다. 양지바른 곳에서는 매화가 한창이다. 그래도, 계절이 바뀌는 큰일에 봄이 오려면 그냥이야 오겠는가. 날씨뿐만 아니라, 나라 안에서는 코로나19 변종인 오미크론 확산과 대통령 뽑는 일에 어수선하고 나라 밖에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이 한창이다.

대통령 뽑는 일이야 걱정할 일이 아니다. 후보자들이 국민의 머슴이 되고자 저리 자청해 목을 매고 있으니 우리는 일 잘할 사람을 골라 표를 찍으면 될 일이다. 당신이 표를 잘못 찍어 내가 못 살게 됐다는 억지는 통하지 않은 지 오래됐다. 나라가 기울어지지 않을 정도는 보장이 잘 되어 있으니 설혹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음 선거에 내 의사를 밝히면 족할 일이다.

우크라이나 일은 우리와 직접 관련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지만, 우리 일인 듯 마음이 서늘하다. 힘 있는 나라가 힘없는 나라를 마음대로 쳐들어가 지배하는 일이 공공연히 허용된다면 힘센 나라에 둘러싸여 고통을 겪어온 우리로서는 이것을 남의 일로 치부할 수만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일제의 강점 여파로 애꿎게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남아 있으면서 아직 전후(戰後) 휴전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니 전쟁 이야기만 들어도 끔찍한 것이다.

침략당한 우크라이나에서는 전쟁의 참상과 함께 지도자의 꿋꿋한 결기가 이채롭고, 목숨을 바쳐 항전하는 전사들의 영웅담도 들린다. 금새 끝날듯했던 이 침략 전쟁이 우크라이나 국민의 의지가 그렇다면 금방 종식되지는 않을 것이라 믿고 싶다. 전 세계가 러시아의 불의를 지켜 보고 있으니 러시아가 국제사회의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으리라고도 생각해 본다. 우리나라도 러시아 제재에 동참한다 했다. 전 세계의 소망이 러시아를 이기리라고 믿는다.

어쨌든 봄이 왔다. 봄은 만물이 기지개를 켜고 잎과 꽃을 피워내고 파종과 성숙과 결실을 기약하는 좋은 때다. 추웠던 과거에 움츠려있을 때가 아니라 찬란한 미래를 꿈꾸는 계절이다. 두꺼운 이불을 떨치고 들판으로 나설 때다. 

생동(生動)하는 봄의 기운을 따뜻하게 노래한 시를 하나 소개한다. 김종길 시인의 시 「춘니(春泥)」이다. 제목의 뜻은 봄날 땅이 녹아 질퍽해진 흙이라는 뜻쯤일 것이다. 

여자대학은 크림빛 건물이었다
구두창에 붙은 진흙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알맞게 숨이 차는 언덕길 끝은
파릇한 보리밭…
어디선가 연식정구의 흰 공 퉁기는 소리가 나고 있었다
뻐꾸기가 울기엔 아직 철이 일렀지만
언덕 위에선,
신입생들이 노고지리처럼 재잘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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