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섭 시인.
송창섭 시인.

[뉴스사천=송창섭 시인]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빈 교실에 남아 공부를 하다가 어둑어둑해지자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 정류소로 향했습니다. 친구와 함께 발을 동동 구르며 저만치 버스가 오는 길목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을 때였습니다. 어디선가 한 소녀가 다가와 시린 손을 비비며 말했습니다. “오빠, 껌 쫌 사 주세요, 껌요.” 순간 동정심인지 측은지심인지 알 수 없었지만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껌을 한 통 달라고 했습니다. 소녀는 난처한 듯 머뭇거리더니 잠시만 기다려 달라 하고는 길모퉁이 쪽으로 냅다 달려갔습니다. 

그 틈에 친구는 그걸 왜 사 주냐며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곧 그 소녀가 돌아와서는 껌을 한 통 내밀었습니다. 껌값으로 나는 20원을 주었습니다. 한 통에 껌이 네댓 개 들었을 것입니다. 소녀는 고맙다며 꾸벅 인사를 하고는 총총걸음으로 이내 사라졌습니다.  

친구는 나에게 닦달하듯 소리쳤습니다. “이 바보야, 너 당했어.” 나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는 “그게 무슨 말인데?” 하고 물었습니다. 사연은 이랬습니다. 내가 소녀에게 껌 한 통을 달라고 할 때 소녀는 껌을 낱개로 한두 개만 가지고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잠깐 주저하다가 가게로 달려가 껌 한 통을 사 가지고 와서는 내게 내밀었던 것입니다. 소녀는 껌을 10원에 사서 20원에 되팔았으니 그 자리에서 10원을 번 셈입니다. 친구는 소녀의 이런 장삿속에 분개하면서 내 판단과 행위가 성급하고 어리석었다며 빈축했습니다.     

나는 친구에게 별 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웃기만 했습니다. 소녀가 처한 상황과 행동을 나 역시 모를 리 없습니다. 차가운 바람에 어둠이 짙어지면서 사람의 발걸음이 뜸한 시각이었습니다. 껌 한 통을 더 팔 수만 있다면 소녀는 얼마나 신나겠습니까. 집으로 재촉하는 발걸음이 무척이나 가벼웠을 것입니다. 어둠에 묻혀 희미하기는 했지만 소녀는 분명 껌값을 받으며 기쁨의 미소를 얼굴 가득 머금었을 것입니다. 내가 먹고 싶은 빵 하나를 참으면 만날 수 있는 저 환한 미소, 소녀의 행복한 웃음이었습니다. 소녀의 미소는 반백 년이 지난 지금도 눈앞을 어른거립니다. 그 미소를 보며 얻은 행복감은 긴 여운과 함께 가슴에 잔잔한 감동으로 남아 있습니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행복은 그 가치와 의미, 무게가 제각각입니다. 플라톤은 행복을 위한 조건을 “먹고 살기에는 조금은 부족한 재산, 칭찬하기에는 약간 부족한 용모, 능력의 절반밖에 알아주지 않는 명예, 겨루어서 한 사람에게 이기고 두 사람에게는 질 정도의 체력, 연설을 들은 청중의 절반 정도만 손뼉을 치는 말솜씨”로 간추렸습니다. 욕심은 비우거나 되도록이면 내려놓고, 꽉 채운 것보다는 다소 부족하고 헐거움을 높이 평가하는 여유로움이 도드라집니다. 

어렵고 힘들었던 신축년, ‘하얀 소의 해’가 저물어 갑니다. 삶이 쇠락하여 바닥까지 떨어졌다면 이제는 치고 오를 일만 남았다는 용기와 희망이 싹틉니다. 이 싹이 자라 행복으로 이끌어 주는 튼실한 동아줄이 되리라, 주먹 불끈 쥐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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