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향분 차벗.
박향분 차벗.

[뉴스사천=박향분 차벗] 지난 주말에는 강원도 두타산 베틀바위 산성길을 걸었다. 단풍이 그야말로 절정에 이르렀고 우리네 인생이 잘 익어가는 것처럼 올해의 가을도 잘 익어가고 있었다. 나는 사계절 중에서도 가을을 가장 좋아한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하는데, 내가 점차 나이가 들어가면서 봄보다는 가을이 좋아지는 건 어쩌면 내 인생도 이 가을쯤에 와 있음 때문은 아닐까 여겨본다.
내 나이 육십을 넘고 보니 아무리 100세 시대라고 해도 나의 인생은 사계절 중 가을에 다가와 있음은 맞지 싶다. 수 년전 나는 어쩌다가 잘 익은 단풍 한번 보지 못하고 지나간 해가 있었다. ‘내가 무엇한다고 그리 바삐 살면서 고운 단풍도 한번 보지 못하고 한해를 보내 버렸나’ 생각하며 허탈해 한 적이 있었기에 그 이후 나는 매년 가을이 되면 꼭 단풍을 보러 떠난다.
올해의 단풍은 두타산에서 처음 보았다. 아직 우리 지역에는 단풍이 살짝 들려고 하는 중인데, 강원도에는 절정을 이루었다. 장장 6시간을 걸었지만, 걷는 내내 아름다운 단풍에 매료되어 수시로 사진을 찍으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이윽고 마천루에 도착해서는 나의 기분을 동다송의 한 구절로 읊기도 하였다.
대부분의 꽃은 봄에 피지만, 차나무는 가을이 되면 꽃이 핀다. 이듬해 봄에는 꽃 진 자리에 씨앗을 맺는다. 다시 가을이면 꽃이 피고 열매는 땅에 떨어진다. 차나무의 한해를 보며 우리는 생명의 순환을 깨닫는다. 차나무는 자기 향기를 지니고 세상을 살아가고, 나도 차나무같이 향기나는 사람으로 살아가야지 생각해 본다.
깊어가는 가을 밤, 내 인생도 고운빛깔로 잘 물들어가는 삶이 되기를 바라며 흑유다완에 말차를 담아 힘차게 격불하니 찻사발 속에는 어느새 밤하늘에 은하수가 수없이 반짝였고 향기로운 말차는 코끝을 스친다. 문득 담원 김창배님의 시(詩)가 떠올랐다.

「찻잔에 인생담고」

차(茶)한 잔에 하늘 실으니
훈훈한 정 별님 되고
윤회의 격동사 돌고 돌아
미움 서린 잔해는
차향(茶香)으로 녹아들어
옛이야기 그득하네.

여한의 구름떼 
찻빛 속에 묻히어
고운 노을빛 꿈꾸며
차(茶)에 스민 오미(五味)의 맛
인생 오미(五味)와 평행선 만드네.

먼 훗날의 자화상
찻잔 속에 피어나
수줍게 삶의 품격 높여주니
차향(茶香)은 연가되어 혀 끝에 인생 싣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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