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이터널스

'이터널스' 영화 포스터.
'이터널스' 영화 포스터.

[뉴스사천=배선한 시민기자] 11월 극장가의 흥행 온도를 높이고 있는 <이터널스>는 <노매드랜드>로 감독상을 비롯 아카데미 4개 부문을 석권한 클로이 자오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섬세하며 예술적 성향이 짙은 이 여성 감독이 연출하는 마블은 어떤 색채인지 한국계 미국인 마동석 배우가 나온다는 사실보다 더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감독부터 배우까지 각기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졌다는 점에서 문화적 다양성을 고려한 이 고의적 캐스팅이 참 좋다. 국적은 물론 각기 다른 아이덴티티에 대한 포용까지 영화를 펼쳐놓기 전 밑그림은 자연스레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전체적으로 영화는 군더더기가 없는 편이다. 이터널스 맴버들의 자기소개가 다소 장황하긴 하지만 새로운 시리즈를 시작하는 방법은 연출자마다 다르니 꼭 마블스러워야 할 필요는 없다. 마블이지만 마블의 색채와는 사뭇 다른 영화의 형식과 내용은 낯섦보다는 감독 특유의 섬세한 결을 살린 새로움이라고 해석하는 게 맞지 않을까.

액션과 코믹을 기대했다면 다소 실망스러울 수 있다. 애초에 그쪽으로 힘을 준 영화가 아니다. 주인공이 워낙 많아서인지 히어로들의 소개는 길게 느껴지는데, 마치 잘 썼지만 지리한 자기소개서를 보는 듯하다. 게다가 하고 싶은 많은 이야기까지 넣어야 하니 러닝타임이 모자랄 지경이다. 하지만 이 장황한 자기소개와 영화를 풀어가는 철학적이며 심미적 시도는 새롭다. 다만 이 영화의 가장 큰 흠인 임펙트 부족의 문제는 이터널스 히어로의 개인 버전이 나온다면 오히려 감독의 역량이 살아날 듯하다. 

어벤저스가 엔드게임으로 장엄한 막을 내리고 난 후, 페이즈4로 가는 디딤돌일지 지뢰일지는 앞으로 이터널스가 안고 가야 할 부담이자 영예이자 숙제이다. 여느 영화가 그렇듯 장단점이 분명하지만, 기존의 마블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여주는 <이터널스>의 장엄한 서사와 가치의 시작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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