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삼조 시인.
정삼조 시인.

[뉴스사천=정삼조 시인] 천태산은행나무시제가 지난 23일 충북 영동에서 열려 처음 다녀왔다. 시제(詩祭)란 말은 아마 ‘시 축제’쯤 되는 말일 듯하니 앞말과 연결해 보면 이 행사는 ‘천태산은행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벌이는 시 잔치’라는 뜻이 되겠다. 뜻을 더 보태자면 천 년을 넘겨 살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천태산에 있는 은행나무는 자연 생명 평화의 대표거나 상징일 수 있겠고 결국 이 시제는 자연 생명 평화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되겠다. 감염병 때문에 사람이 많이 모일 수 없어 영동 어느 고택의 마당을 빌어 가을볕 아래 소박하게 그러나 매우 진지하게 진행된, 시와 음악과 사람이 잘 어우러진 행사였다.

생각해 보면 사람도 자연 중 한 존재로 틀림없는데, 사람들은 너무 쉽게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는 것 같다. 사람의 몸은 흙과 물과 불과 바람으로 이루어져 죽으면 결국 다 자연으로 돌아가게 마련이라는 말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내남없이 그런 미래를 실감하지 못하고 산다. 나도 어느 순간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리라는 고민과 불안에 싸여 할 일을 제대로 못 하는 사람이 되자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더 열심히 살고, 남을 위할 줄 알고, 자연의 일부 된 몸으로 자연을 더 아끼고 섬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리라는 것이다. 헛된 욕심에 사로잡혀 삶을 허비하는 사람이 되지는 않아야겠다는 것이다.

천태산은행나무시제에서는 해마다 이 행사에 공감하는 시인들의 시를 모아 책을 발간해 왔다. 올해는 353명의 자연 생명 평화를 소재로 하는 시를 묶어 『천태산 하늘 북』이라는 두툼한 시집을 내었다. 이 시집의 서문(序文)이라 할 글에서는 천태산은행나무를 ‘천 년이라는 세월 동안 가난하고 소외된 아픈 삶을 어루만지며 하늘을 오롯이 품은 나무,…’로 소개하고 있다. 책 제목의 ‘하늘 북’은 ‘지리산 시인’이란 별호로 널리 알려진 이원규 시인이 이 시집에 발표한 시 제목 「天鼓(천고)」를 풀어 쓴 듯하다. 특히 남성적이며 강렬한 어조로 지상의 평화를 갈구하는 시로 읽을 수 있겠다. 뒷부분을 소개한다.

“…이미 오래전에 눈멀고 귀먹어/번개가 쳐도 알아보지 못하는 밤이여/천둥소리 울려도 알아듣지 못하는 시절이여//역천의 지구는 벌써 망했지만/수천만 마리의 소는 죽어 살가죽을 말리며 울고/수억만 마리의 소가죽 북이 울어/단전 깊숙이 소 울음인지 땅 울음인지/마침내 병든 지구 대신 천태산 하늘북이 운다//이 가을에 울고 또 울어/백만 리 머나먼 달나라까지/저 먼저 환해지는 천년 은행나무가 있다”

이 시집의 시 중 공광규 시인의 시 「물갈퀴 양말 공장」도 음미해 볼만한 아름다운 시이다. 앞부분을 인용한다.

“천태산 영국사 앞뜰 아래/천년을 살았다는 은행나무는/새들의 물갈퀴 양말 공장//겨우내 빈 나뭇가지로/달빛 별빛 뜨개질하여/나뭇가지에 걸어놓으면//봄바람이 와서/작은 초록색 물갈퀴 양말을/신어보고 가고//여름날 나뭇가지에/파란색 물갈퀴 양말 걸어놓으면/비바람이 와서 신어보고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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