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사천=최진정 사천중학교 교사] 가을이 되면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온 세상의 온갖 풍경을 빛나게 한다. 일어나 마당에 나가면 ‘만리향’ 꽃향기가 어디서 풍겨오는지 발걸음을 붙잡고, 아기 주먹 같은 노란 감이 잎사귀 사이로 얼굴을 내민다. 출근길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들녘에는 농부들의 땀방울로 황금물결이 출렁댄다.

가을이 되면 절로 고개를 숙이게 된다.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대지의 어머니가 내놓는 먹거리를 보면 감사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지구라는 행성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들에게 계절마다 식량을 마련해주는 자연의 섭리에 감사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인 자신의 오만함에 부끄러울 따름이다. 지금 이 순간, 어머니 자연이 베풀어주는 품속에 있어 감사할 따름이다. 돌이켜보면 머리를 숙일 줄 모르고 감사할 줄도 모르고, 제 잘난 맛에 멋도 모르고 살았는데…….

조금이라도 철이든 계기가 나 자신에게 닥친 아픔이었다. 결혼한 지 이듬해, 아들이 태어나 백일이 되던 날, 떡을 돌리고 아내의 권유에 따라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약만 복용하라는 의사의 처방에도 내시경 검사를 했다. 일주일이라는 기다림 끝에 위암이라는 의사의 떨리는 통보……. 어떻게 왔는지, 과속과 신호 위반으로 따라붙은 순찰차의 경관이 내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평소에는 잘 가지도 않던 할머니와 아버지의 산소에 가서 살려달라고 아이가 초등학교 가는 모습만이라도 보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소원을 빌었다.

좋은 의사 선생님을 만나 수술하고 회복 중이었는데, 같은 병실, 같은 병으로 며칠 빨리  수술한 환자가 찬물을 한 모금 먹는 게 너무나 부러웠고, 카스테라 빵 한 조각에서 나는 냄새가 하늘나라에서 풍겨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조금 회복이 되어 그 맛나 보이던 찬물 한 모금, 빵 한 조각을 목구멍에 넘겼을 때, 그것은 고통과 아픔이었다. 이렇듯 절망적인 시간에도 인간의 욕망은 순간순간 바뀌었다. 새벽에 일어나 앞산에 오르고 가족들의 지극한 돌봄을 받아 지금은 어느 정도 사람 구실을 하는 듯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 절망적인 시간도 하느님과 조상님과 현대 의학의 도움으로 벌써 26년째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업을 30년째 해오고 있다. 살아오면서 삶에 대해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이들의 모습에서 지나간 내 시간들을 투영해 보며 공감하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으로 순간을 대한다. 삶이란 기쁨도 슬픔도 있지만 설렘이란 생각을 참 많이 하게 된다. 

소풍날 기다리는 아이처럼/ 설레임 가득 새벽같이 눈을 뜬다.

창을 열고 마당에 나가/ 기지개를 켜면/ 납닥산을 넘은 햇살에/노란 감 하나/ 노오란 모과 둘
/주먹을 내지르듯 계절을 알리고/ 만리향 꽃향기 코 끝에/꽃잎이 진다.

의관을 갖추고/ 아이들을 맞으려 학교에 가면/ 눈을 비비며/ 게슴츠레 인사를 건넨다.

한명한명 아이들이 다들/ 너무 반갑다./ 하룻밤 시간인데/ 천리 만리 여행을 다녀온 듯
/ 하루 하루가 다르다.

오늘은 무슨 이야기로/ 아이들과 밭을 가꿀까?/ 소풍을 갈까?/ 공을 찰까?
땡땡이를 칠까?

나도 모르지만/ 콩닥콩닥 가슴 뛰는 순간순간이/ 너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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