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츠노오대사에 가면 신령바위에 올라 술을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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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노오대사에 가면 신령바위에 올라 술을 마시라
  • 김영조.이윤옥 시민기자
  • 승인 2010.01.07 16: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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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속 우리 문화 톺아보기>⑥ 서부 교토 개척자 한국계 하타(秦)씨족과 마츠노오대사(松尾大社)

천년고도 교토는 이르는 곳마다 오래된 절과 신사가 즐비하지만 명주(名酒)의 고장으로도 유명하다. “타마노히카리(玉乃光)”라든지 “츠키노가츠라(月の桂)” 같은 이름난 술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물이 좋기 때문이다. 이러한 물은 곧 벼를 살찌우고 살찐 벼는 고운 빛깔의 쌀로 태어난다. 명주의 탄생에 필수적인 물 그러나 그 물은 술 빚는 데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데도 요긴하다. 그래서 예부터 물을 다스리는 사람은 그 부족의 우두머리가 되었던 것이다.

교토 관광협회에서 나온 안내책자에 따르면 교토를 5개 지역으로 나누고 여기에 각각 낙(落)자를 붙여 낙동, 낙서, 낙북, 낙남, 낙중으로 부른다. 낙서(落西)지방은 국보 제1호 미륵상이 있는 광륭사(廣隆寺, 고류지)와 한국인이 자주 찾는 금각사 등이 자리하고 있는 교토에서도 손꼽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교토 어딜 가나 고대 한반도와 관련되지 않은 곳이 없지만 이 서부지역만큼 넓은 땅에 걸쳐 한반도와 관련된 곳도 드물 것이다.

▲ 교토의 맑을 물로 빚은 명주들

일본 제일의 술신(日本第一酒造神)을 모시는 신사로 알려진 마츠노오대사는 교토에서 가장 오래된 신사이다. 한큐전철을 타고 마츠오역에 내리면 바로 역과 붙어 있어 누구나 찾기 쉽다. 광륭사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마츠노오대사(松尾大社, 마츠오대사라고도 함)를 찾은 것은 10월 마지막 주말 햇살이 따사로운 오후였다. 신사(神社)보다 급이 높아 대사(大社)라 불리는 이곳 붉은 도리이는 푸른 하늘과 절묘한 조화를 자아낸다.

▲ 사람 키보다 대 여섯 배나 되어 보이는 마츠노오대사의 붉은 도리이(鳥居)

전철역에서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면 바로 붉은 빛깔이 선명한 육중한 도리이가 눈앞에 버티고 있다. 도리이를 향해 이십여 발자국을 걷다 보면 커다란 주차장이 나온다. 도리이 크기와 주차장의 크기야말로 절이나 신사의 규모를 가늠케 하는 잣대이다. 그날도 서너 대의 버스에서 내린 단체 관광객이 물밀듯이 신사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잠시 그들이 다 들어가기를 기다리던 일행 눈에는 야구장 전광판만 한 크기의 커다란 광고판이 눈에 띄었는데 거기에는 일본 전통 옷을 입은 어린 남녀부터 성인식과 결혼식을 알리는 사진이 빼곡히 들어 있다.

오미야마이리(출생 30일 전후 신사 참배), 七,五.三 (시치고상, 3,5,7살 어린이의 신사참배) 입학, 졸업, 13신사 순례, 성인식, 결혼식, 환갑 등의 기념일에는 마츠노오대사를 이용하라는 광고판으로 일본인과 신사가 얼마나 밀접한가를 잘 나타내준다.

마츠노오대사 경내에 들어서자 11월 15일에 있을 시치고상을 접수하기 위한 시설물 설치가 한창이었다. 10월 말경부터 제법 이름난 신사들은 시치고상 행사 준비로 분주하다. 신사 들머리에 무수히 걸려있는 상업성 짙은 시치고상을 안내하는 펼침막들이 때마침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일렁인다. 그 깃발 사이를 총총히 걸어 신사 사무소에 시치고상을 접수하러 가는 일본 어머니의 마음은 그 옛날 우리 어머니들이 장독대에 정화수 한 그릇 떠놓고 아이의 건강과 안녕을 빌던 그런 마음일까를 생각하게 한다.

▲ 시치고상, 입학·졸업, 성인식, 결혼식을 하라고 선전하는 마츠노오대사의 광고간판
▲ 저 멀리 도리이로 향하는 참배길에 세워진 시치고상 광고깃발들

대대손손 우리의 어머니들이 정화수를 놓고 정갈한 마음으로 지극정성 빌어 오늘 우리가 이렇게 잘살고 있는지 모를 일이지만 이제는 그 정화수를 놓던 장독대도 정화수를 놓고 빌던 어머니도 없다. 그 장독대가 있던 자리엔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 있고 오늘의 어머니들은 장독대가 놓여있을 베란다에 헬스기구를 놓고 자신을 위해서 지금 열심히 뛰고 있다.

열심히 잰걸음으로 아이의 미야마이리와 시치고상과 결혼식을 위해 문턱이 닳을 정도로 뛰어다녔던 일본 어머니. 그들은 지금도 여전히 친정처럼 이웃처럼 신사를 드나드는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 신사의 신은 어쩜 포근한 친정어머니와 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마츠노오대사를 찾던 날은 오전에 대지(大枝,오오에)의 고야신립 무덤을 다녀오는 길이라 일행의 다리는 벌써 지쳐 있었다. 그래서인지 앉을 의자만 보이면 너나 할 것 없이 달려가서 앉아 버리는 통에 잡아놓은 일정이 자꾸 틀어진다. 그래도 쉬엄쉬엄 가야 한다. 푸른 하늘도 바라다보고 깊어가는 신사 경내의 곱게 물든 단풍도 봐야 한다. 그리고 이 신사가 여기에 오랫동안 존재하는 이유도 천천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본전(本殿)으로 들어가는 누문(楼門)을 지나 오른쪽으로 나있는 우물가 주변의 벤치에 삼삼오오 앉아 지친 다리를 쉬어가기로 했다. 늦가을의 신사 경내는 단풍들로 화려했고 고색창연한 건물들은 그 빛깔에 뒤섞여 세월의 무게를 털어내고 있었다.

▲ 마츠노오대사 전경. 신사가 들어선 뒷산이 포근하고 아늑하다.

태초에 그 누가 이 너른 신사를 가꾸고 다듬어 지금 이토록 많은 일본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가? 본전 앞에는 쉴 새 없이 일본인들이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들의 바람은 무엇일까? 본전에 모시는 술의 신에게 그들은 무엇을 저리도 갈구하는 것일까? 기도하는 모습을 뒤로하고 신사 본전 뒷산을 바라다본다. 마치 신사를 두 손으로 감싼 듯한 포근한 마츠오산(松尾山, 223m)은 아기를 안은 어머니 모습처럼 안온하다.

어디선가 본 듯한 아늑한 산자락과 신사건물의 조화는 바로 일본 땅에 건너와 터를 잡은 이들의 고향사랑을 그대로 느끼게 해주는 정경이다. 저기 숲 속 꼭대기 부근에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이와쿠라(磐座)”라는 이름의 이 큰 바위는 신령바위로 알려져서 찾는 이가 줄을 잇는다고 한다. 5세기경 이곳에 터를 잡은 이들은 이 바위에 지극정성으로 제사를 지냈다.

그 바위신은 이들의 정성을 받아들여 이들이 서부교토에서 터를 잡고 생업을 일으키도록 도왔다. 이들이 정착해서 살려고 만든 저수지를 비롯한 각종 제방공사와 토목공사, 양잠기술, 직조기술, 술 빚는 기술 등은 이때부터 서부교토를 살찌우게 했으며 이러한 탄탄한 경제력은 황실에까지 미쳐 조정은 이들의 도움으로 교토부흥과 개발에 박차를 가했으니 이들이 그 유명한 진(秦)씨 일족이다. 일본말 하타씨로 소리가 나는 이들 진씨의 정체는 누구인가?

<제2편> “미국 서부개척에 청교도가 있었다면, 교토 서부 개척엔 하타씨”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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