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륜휘 '바다가분다' 공방 대표.
구륜휘 '바다가분다' 공방 대표.

[뉴스사천=구륜휘 바다가분다 공방 대표] 나에게는 스물한 살 나이차가 나는 연인이 있다. 그와 이야기를 할 때면 친구랑 이야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이 즐겁고 무한하다. 서로가 엇비슷한 정신적 나이를 체득해 온 이유가 아닐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때때로 어른으로서 내게 말을 건넨다. 

공자의 말을 빌려 그는 말했다. “사람은 시(詩)와 예(禮) 그리고 악(樂)을 중요시해야 해요. 시는 뭐, 하늘이 아름답고 바람이 불고 그런 게 아니고요. 내가 느끼는 것을 말해요. 예는 세상의 이치에요. 이치는 세상의 순리라는 건데, 유연하게 세상을 만나는 거죠. 그리고 악은 나의 세상을 창작하는 것을 말해요.”

이 말을 하면서 그는 “아무리 시(詩)와 악(樂)을 하더라도 예(禮)가 없다면 공허한 외침일 뿐이에요.”라고 덧붙였다. 

친구 같은 연인이 어른으로 느껴지는 순간은 위와 같이 어려운 말을 쉽게 전달해 줄 때이다. 한자어를 잘 모르는 나를 배려해 한글로 풀이해 주는 세심함도 어른의 미덕 중에 하나 일 것이다. 

지금의 나는 젊은 편에 속한다. 내가 만나는 어르신들 모두를 나는 어른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인간으로서 개인이 갖는 교양이 있을 때, 나는 그를 어른으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어른이 왜 중요한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할 지점이 생긴다. 사람이라면 어느 때고 혼란스러운 시기가 오기 마련이다. 그건 나의 부모님 또한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당신의 어른은 누구입니까?” 하고 물으면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그런 사람이 어디 있노.”가 그것이다. 어른의 어른이 없는 게 당연해진 세상인 것이다. 그 한계는 우리가 지정해 놓은 어른의 기준이 물리적 나이에 한정되기 때문이 아닐까?

앞서 언급한 시(詩), 예(禮), 악(樂)처럼 세상의 이치에 유연하게 맞설 수 있는 사람이 있다. 보통 세상을 많이 경험한 어르신에 한정해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나에게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나에게 영감을 주는 그 사람이 곧 나의 어른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연인에게도, 부모님에게도 어른이고 싶다.

많은 나이차가 나는 나의 연인을 보며 사람들은 “도둑놈.”이라고 말한다. 나는 그 말을 하는 사람들을 굉장히 싫어한다. 만약 나의 연인이 도둑놈이라면 나는 장물이 되는 건가? 어떤 희생자가 되는 건가? 이런 말을 일삼는 사람들에게 나는 되묻는다. “제가 장물인가요? 희생자인가요?” 그러면 그들은 뒤늦게 나의 속마음을 알아채고 주춤 물러선다. 나는 도둑놈에게 잡혀 온 인질도 아니고 장물도 아니다. 나라는 사람이 선택한 사람이 나의 연인이고, 연인이 선택한 사람이 나일뿐이다. 신경이 예민한 편인 나는 하루의 에너지를 그 대화에서 탕진하고야 만다. 

집에 돌아와서 그는 내게 말한다. “륜휘 씨, 오늘 어른 같았어요.” 미안해하며 건네는 위로의 말이 저 모양이다. 근데 나 저 말이 너무 좋다. 나를 교양 있는 한 사람으로 인정해 주는 말이기에 그렇다. 나는 ‘어른’을 좋아한다. 내가 어른이 되는 것은 너무 기분 좋은 일이다. 누군가에게 삼십대는 너무나 불안정하고 흔들려서 스스로 늙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늙은 삼십대도 젊은 삼십대도 어른으로 존재하는 삼십대를 보내었으면 한다. 어느 곳에서나 어른 역할을 톡톡히 해나가는 어른의 어른이 되는 나를 기대해 본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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