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화력발전소를 교육‧문화발전소로②

부산 도심의 복합문화공간 ‘F1963’…친환경 문화공장
제주 비밀 벙커는 ‘몰입형 미디어아트, 빛의 벙커’로!
다양한 실험 계속…“폐발전소도 문화재생 가능하다”

제주 서귀포시에 있던 국가간 통신 벙커가 ‘빛의 벙커’로 탈바꿈한 가운데 관람객들이 전시에 몰입한 모습.
제주 서귀포시에 있던 국가간 통신 벙커가 ‘빛의 벙커’로 탈바꿈한 가운데 관람객들이 전시에 몰입한 모습.

‘지역경제를 일으키는 효자’에서 ‘환경문제를 일으키는 골칫거리’까지, 다양한 평가 속에 40년 가까이 전기를 생산해온 삼천포화력발전소가 서서히 생명을 다하고 있다. 쓸모를 다한 까닭이다. 그러나 낡은 건축물일지언정 새로운 쓸모는 정녕 없을까? 이런 물음으로 <뉴스사천>과 <고성신문>이 함께 답을 찾아 나선다. 화력발전소가 교육‧문화발전소가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편집자-

[뉴스사천=하병주 기자] 발전소가 생명을 다한 뒤 미술관이나 공연시설로 거듭난 사례가 해외에선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아직 없다. 대체로 낡은 시설을 허물고 새로운 발전소를 다시 짓는 정도다.

그러나 지난 기사에서 살핀 것처럼, 석유비축기지나 쓰레기소각장으로 썼던 시설물이 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일이 이젠 국내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산업시설이 문화재생을 만나 변신하는 셈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부산시 도심과 제주시의 한적한 시골에서도 찾을 수 있다.

와이어 공장에서 문화공장으로

부산의 도심에 있던 철(와이어) 공장이 복합문화공간 F1963으로 거듭나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부산의 도심에 있던 철(와이어) 공장이 복합문화공간 F1963으로 거듭나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부산시 수영구 망미동의 한 도심지. 이곳 주민들은 몇 해 전부터 산책이나 가벼운 운동을 위해 멀리 떨어진 공원이나 수영강 강변을 굳이 찾지 않아도 된다. 바로 가까이에 편하게 거닐 수 있는 공원과 산책로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뿐 아니다. 이곳엔 전시관과 공연장, 도서관까지 들어서 있어, 휴식과 문화를 즐기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쾌적한 카페나 식당은 즐겨 삼는 약속장소다.

먼 곳 주민들까지 단골로 찾는다는 이곳은 ‘재생과 친환경을 추구하는 문화공장’을 기치로 내세운 복합문화공간, F1963이다. F1963에서 ‘F’는 공장(Factory)을, ‘1963’은 1963년을 뜻한다.

이곳에선 1963년부터 2008년까지 45년 동안 와이어가 생산되었다. 즉, 고려제강주식회사(=Kiswire)의 모태가 되는 공장이 이곳에 있었다. 세월이 흘러 공장은 다른 곳으로 옮겨갔지만, 남은 건물과 공간은 오랜 역사를 품은 채 새롭게 활용되고 있는 셈이다.

고려제강의 와이어 공장은 2008년에 문을 닫았으나 한동안 텅 빈 상태로 있었다. 그러다 “의미 있는 공간으로 쓰자”는 경영자의 취지에 따라 2013년에 박물관과 기업홍보관을 설치했다. 이어 2016년에는 부산비엔날레의 전시관으로 쓰였다. 이를 계기로 지금의 모습을 점점 갖추어 갔다. 이 과정에 부산시의 협조가 있었고, 문화체육관광부의 ‘산업단지・폐산업시설 등 유휴공간 문화재생사업’이 활용되었다.

코로나19로 위축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었음에도 제법 많은 시민이 F1963의 곳곳을 채우고 있었다.
코로나19로 위축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었음에도 제법 많은 시민이 F1963의 곳곳을 채우고 있었다.

이로써 약 10만 제곱미터의 와이어 공장 터는 크게 세 갈래로 나뉘었다. 하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다른 하나는 고려제강의 본사 공간으로 쓰인다. 나머지는 민간에 임대한 상태다. 그중 F1963은 기존 건물의 형태와 골조를 유지한 채 공간의 사용 용도에 맞게 거듭나 있다.

F1963을 눈으로 직접 확인한 건 6월 18일이다. 결과는 생각보다 놀라웠다. 도시재생 또는 문화재생이란 이름표가 붙은 여느 시설보다 활력이 넘쳐 보였다. 코로나19로 위축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었음에도 제법 많은 시민이 F1963의 곳곳을 채우고 있었다. 이곳의 운영 책임을 맡은 이안기 팀장은 “코로나19가 발병하기 전에는 연간 60만 명 이상이 찾는 곳”이라며 위상을 소개했다.

잊혔던 비밀 벙커가 빛의 벙커로

빛의 벙커 입구
빛의 벙커 입구

제주 서귀포시 성산에는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비밀 벙커가 있었다. 이 벙커는 통신시설이었다.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에 해저 광케이블 통신망을 깔기 위한 전초기지였던 셈이다.

1980년대 무렵에 들어선 이 시설은 2010년 무렵 효용 가치를 다했다. 그렇게 잊힌 채 방치됐던 이 비밀 벙커는 2018년에 이르러 ‘빛의 벙커’로 새롭게 태어났다. 지금은 ‘제주를 찾는 관광객이라면 한 번쯤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손꼽히는 이름난 곳이 되었다.

빛의 벙커 역시 산업시설이 문화시설로 탈바꿈한 대표적 사례다. 그 중심에는 ㈜티모넷이 있다. 민간기업인 티모넷은 프랑스의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사업을 기획하고 2015년부터 그 대상지를 찾아 나섰다. 그러다 만난 곳이 통신 벙커였다. 2017년부터 기존의 시설을 1년 넘게 다듬고 꾸민 끝에 빛의 벙커를 탄생시켰다.

2018년 11월에 ‘빛의 벙커: 클림트’ 전을 시작해 1년간 56만 명의 관람객을 유치했다. 이듬해 12월엔 ‘빛의 벙커: 반 고흐’ 전으로 올해 2월까지 48만 명의 관람객을 이끌었다. 코로나19라는 특수 상황을 고려하면 놀라운 기록이다. 그리고 올해 4월부터는 ‘빛의 벙커: 모네, 르누아르…샤갈’ 전을 열고 있다.

폐발전소의 새로운 활용 방안을 찾고자 빛의 벙커를 방문한 것은 지난 6월 12일이었다. 어두컴컴한 공간에 들어서자 먼저 오감을 압도해 온 것은 음악(소리)이었다. 이어 미술 거장의 작품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 벽면과 바닥에 떠다녔다. 수십 대의 빔프로젝트가 만들어내는 빛의 예술이자 향연, ‘몰입형 미디어아트’의 특징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빛의 벙커를 방문하면  수십 대의 빔프로젝트가 만들어내는 빛의 예술이자 향연, ‘몰입형 미디어아트’의 특징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빛의 벙커를 방문하면  수십 대의 빔프로젝트가 만들어내는 빛의 예술이자 향연, ‘몰입형 미디어아트’의 특징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빛의 벙커 사업을 총괄하는 김현정 이사는 “산업화의 주역이었던 산업시설을 문화예술 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 일이 우리의 관심사”라며, “폐발전소를 재사용하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티모넷은 올해 초 제2의 빛의 벙커 개관 작업에 들어갔다. 장소는 서울에 있는 워커힐 호텔 극장이다. 개관 시기는 올해 연말 또는 내년 초가 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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