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화력발전소를 교육‧문화발전소로①

산업유산이 문화재생을 만났을 때…공존을 위한 실험
서울 시민들의 문화‧휴식공간…‘문화비축기지’를 가다
갈등의 공간이 협력의 결과물로…‘부천아트벙커B39’


‘지역경제를 일으키는 효자’에서 ‘환경문제를 일으키는 골칫거리’까지, 다양한 평가 속에 40년 가까이 전기를 생산해온 삼천포화력발전소가 서서히 생명을 다하고 있다. 쓸모를 다한 까닭이다. 그러나 낡은 건축물일지언정 새로운 쓸모는 정녕 없을까? 이런 물음으로 <뉴스사천>과 <고성신문>이 함께 답을 찾아 나선다. 화력발전소가 교육‧문화발전소가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편집자-

[뉴스사천=하병주 기자] 쌀을 빻던 방앗간과 술을 빚던 양조장이 근사한 카페나 식당으로 거듭나 손님들로 붐빈다는 얘기는 이제 놀랍지도 않다. 그만큼 낡은 것을 다시 새롭게 활용하는 문화는 일상이 되었다. 어디 이것뿐이랴. 한때 배를 만들어내던 거대한 조선소가 캠퍼스로 바뀌고, 철을 생산하던 제철소는 친환경 공원으로 거듭났다. 비록 외국의 사례이긴 해도 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도시재생이 문화재생과 만나면서 새로운 시도가 일어나는 셈이다. 산업유산의 재활용이자 옛것과 새것의 공존을 위한 실험이다.

석유에서 문화로

문화비축기지의 전경. 운동장 바닥의 콘크리트 더미까지 그대로 남긴 모습이다.
문화비축기지의 전경. 운동장 바닥의 콘크리트 더미까지 그대로 남긴 모습이다.

서울시 마포구 증산로 87. 매봉산 자락인 이곳에는 문화비축기지가 있다. 문화비축기지? 이름이 낯설 수 있다. 하지만 이곳은 TV에도 자주 등장할 만큼 요즘 꽤 잘나간다. 코로나19 탓에 타격이 심하다고 하나, 여전히 전시와 공연이 줄을 잇는다.

문화비축기지의 옛 이름은 마포석유비축기지이다. 1970년대 석유 파동을 계기로 정부가 1978년에 세웠던 시설물이다. 여기엔 당시의 서울 시민들이 한 달간 사용 가능한 6907리터의 석유를 보관할 수 있었다. 이 시설물은 2000년까지 가동되다가, 2002년 월드컵 대회 개최를 앞두고 그해 말에 문을 닫았다.

석유비축기지는 월드컵 대회가 끝난 뒤 한참이 지난 2013년까지도 민간인 출입 금지 구역으로 있었다. 그러다 이 무렵에 서울시가 폐산업 시설을 활용할 아이디어 공모전을 연 끝에 새로운 길을 찾았다. 석유 대신 색다른 문화를 만들어내는 문화탱크로 사용하고자 한 것이다.

문화비축기지 건물 전경.
문화비축기지 건물 전경.

그 결과 석유가 담겼던 대형 탱크는 열린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비어 있던 너른 공간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고, 탱크를 가렸던 나무와 숲에는 산책로가 들어서 멋진 생태문화공원으로 거듭났다. 이 과정에 시민들은 다양한 의견을 내면서 더 멋진 문화공간을 만들고자 함께 애썼다.

옛 마포석유비축기지 외벽을 일부 남겨 열린 공연장으로 활용하고 있는 모습.
옛 마포석유비축기지 외벽을 일부 남겨 열린 공연장으로 활용하고 있는 모습.

지난 7월 2일. 글과 사진으로만 보던 문화비축기지를 직접 찾았다. 전체 면적이 14만㎡에 이를 만큼 넓다 보니 입구에서는 시설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문화해설사의 안내로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새로운 공간의 등장에 놀랐다. 무엇보다 거칠고 육중한 몸매를 자랑하는 건축물 원형이 풍기는 느낌이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이현옥 문화해설사가 문화비축기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현옥 문화해설사가 문화비축기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안내를 맡은 이현옥 문화해설사는 “코로나19와 시설 보수 탓에 진행 중인 문화행사가 부족한데도 산책 삼아 들러는 시민들이 많다”며, “서울 시민들에겐 훌륭한 문화 휴식 공간”이라고 문화비축기지를 소개했다.

이곳이 한때 쓰레기 소각장?

경기도 부천시의 도심(삼정동) 한복판. ‘이곳이 내가 찾는 곳이 맞나?’ 하는 의심이 들 즈음, 대형 출입문 상단에 붙은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부천아트벙커B39’. 부천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문화시설로서, 이곳 또한 산업유산이 문화시설로 탈바꿈한 대표적인 사례다.

이곳은 애당초 ‘삼정동 쓰레기 소각장’이었다. 1995년부터 2010년까지 가동되다 멈췄다. 삼정동 소각장을 기억하는 대중들은 이곳을 ‘다이옥신 파동’으로 많이 기억한다. 1997년 환경부의 조사 자료에 따르면, 삼정동 소각장에선 다이옥신 농도가 허용치보다 20배나 넘게 검출됐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주민과 행정은 심한 갈등을 겪어야 했다. 이 과정에 자원순환센터라는 새로운 시설이 들어섰고, 삼정동 소각장은 문을 닫았다.

다시 4년의 세월이 흐른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와 부천시는 이 공간을 문화예술 플랫폼으로 만드는 작업에 들어갔다. 펀드를 조성하는 등 민관이 4년간 노력한 끝에, 2018년 6월에 이르러 복합문화예술공간 ‘부천아트벙커B39’의 문을 연 것이다. 숫자 39는 쓰레기 저장조의 39m 높이를 뜻한다.

부천아트벙커B39의 에어 갤러리 모습.
부천아트벙커B39의 에어 갤러리 모습.

쓰레기를 운반하고 태우고 처리하던 공정과 그것을 다루던 사람들의 움직임을 예술 공간으로 재구성했다. 쓰레기를 실은 트럭이 들어오던 곳은 멀티미디어 홀로, 쓰레기를 태우던 소각시설은 야외 다목적 공간인 ‘에어 갤러리’로 바뀌었다. 이밖에 다양한 시설과 공간이 스튜디오나 휴게시설로 모습을 바꿨다. 이 과정에 일부 기계나 장치들은 옛 모습으로 그대로 남겨둬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중첩되도록 했다.
 

옛 소각장 내부 시설과 공간이 스튜디오와 휴게공간으로 재탄생했다.
부천아트벙커 B39는 일부 기계나 장치를 남겨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중첩되도록 했다.
부천아트벙커 B39는 일부 기계나 장치를 남겨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중첩되도록 했다.

이곳을 방문한 7월 2일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준비를 앞두고 모든 전시나 문화행사를 멈춘 상태였다. 비록 직접 관람할 순 없었지만, 투박한 공간에서 펼쳐질 전시와 공연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경험이었다.

‘부천아트벙커B39’는 지난해까지 민간에서 운영했으나, 올해부터는 부천문화재단이 직접 운영을 맡고 있다.

부천아트벙커B39 건물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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