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삼조 시인.
정삼조 시인.

[뉴스사천=정삼조 시인] 우스개처럼 하는 말로, 선거철에는 소설이 잘 안 팔린다는 말이 있다. 이 정치판이 기기묘묘(奇奇妙妙)하고 천변만화(千變萬化)하여 현실 세계가 꾸민 세계보다 더 흥미진진(興味津津)하니 굳이 돈과 시간을 들여 소설을 사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통령을 뽑는 대선이 반년 남짓이 다가오자, 바야흐로 각 당의 후보자 진영에서는 당 안의 경쟁자를 물리치랴, 타 당의 유력자를 견제하랴 분주하기 짝이 없다. 경쟁자를 나보다 아래에 두는 방법은 아무래도 그 사람의 약점을 잡아 까발리는 것이 우선 편한 일인지, 한 편이 다른 한 편의 비리를 폭로하면 상대편에서는 저편의 새로운 비리를 찾아내 반격하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내가 이래서 상대방보다 낫다는 얘기는 이 공격과 역공격에 묻혀 잘 들리지 않는다. 한 마디로 어지럽고 흐리기 짝이 없다. 다만 바라는 것은, 이런 과정을 거쳐 당선자와 낙선자가 나오면 모두가 거기에 승복하고 다 힘을 합쳐 바람직한 미래로 함께 나아가는 일이다. 그리고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근래 그 일을 잘 해내 왔다고 믿는다. 

마침 아침저녁으로는 날씨도 선선해졌다. 간혹 미처 못 물러간, 게으른 더위가 더 남았는지 단정할 수야 없지만 이만큼만 해도 우선 숨을 쉬겠다. 생각하면 올해는 얼마나 무더웠던가. 이제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그 공기의 신선함을 더위와 싸워 이긴 승리자처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날씨만 놓고 보면, 어제보다 조금 더 시원한 오늘은 얼마나 행복한 날인가.

한국항공대학 교수직을 정년퇴직한 선배께서 지난 인연을 잊지 않으시고 아침마다 동서고금의 좋은 시나 글귀에 그림을 그리고 짧은 감상을 덧붙여, 옛날 엽서 모양의 카톡을 보내주신다. 게으른 후배는 한 달에 한두 번 잘 있느냐는 인사에 그냥 옛날처럼 살지요 하고 마는데, 무협지에 상투적으로 나오는 ‘강호에 즐비한 숨은 고수’처럼이나 세상에 좋은 시나 글이 얼마나 많은지 아침마다 이 짧은 엽서 읽는 재미가 적지 않다. 서울의 녹번동에 사시는 까닭인지 이름을 ‘녹번통신’이라 붙이셨는데 며칠 전엔 이광 시인의 시 「귀뚜라미」를 부쳐오셨다. 잊고 있던 것을 불현듯 불러오는 시원한 시다. 과문한 탓에 이 시인의 존함이 낯이 선데, 아마도 예의 ‘강호 고수’임에 틀림없지 싶다. 시는 시조 두 수다. 전문을 소개한다.

“올 것은 그냥 둬도 제삿날 오듯 온다/ 내내 용케 숨었다가 어느새 오고 만다/ 깜깜한 기억의 골방 반짝 불이 켜진다// 지난해 못 다했던 울음 다시 꺼내 운다/ 한동안 끊은 소식 쫑알쫑알 들먹이다/ 오래전 듣던 발자국 생각난 듯 뚝 그친다”

밤의 정취를 알리기로는 여름은 개구리 소리요, 가을은 귀뚜라미 소리다. 요 몇 밤 귀 기울여 들으니, 과연 귀뚜라미 소리밖에 없다. 잊었다가 듣는 소리는 금세 지난 일을 불러낸다, 이 시를 보내신 이는 귀뚜라미 소리를 일컬음 인지, 아니면 귀뚜라미 소리를 노래한 시를 칭찬한 것인지 글의 말미를 ‘시인가객도 절창’이라 마무리하고 있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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