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가(一稼)의 차(茶) 이야기]

박향분 차벗.
박향분 차벗.

[뉴스사천=박향분 차벗] 오래전에 차(茶)를 함께 배웠던 도반 일곱 명은 은사님께서 한옥차실을 가졌음을 축하해 드리고자 번개만남을 가졌다.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차(茶)벗들과 차 한잔 나눌 수 있는 작은 공간, 차(茶)실 하나 갖기를 늘 소원한다. 이번에 은사님께서 그 소원을 이루어 우리 일곱 제자가 3년 만에 한옥차실에서 회우하게 되었다.

우리에게 차를 사랑하게 해 주신 분, 차의 곧은 심성과 향기로움과 베풂을 알게 해 주신 분, 우리는 늘 이 은사님을 존경한다. 은사님께서는 다솔사 아래 아주 고즈넉한 한옥차실을 지으셨다. 차실에 들어서는 마당 입구에는 소나무 두 그루가 한옥의 멋스러움을 더해주고 있었고, 잔디마당 사이사이로 놓인 징검돌은 소박한 아름다움을 자아냈다.

나는 차벗들과 차실 내부를 천천히 둘러봤다. 입구의 차실은 황토방이었는데, 차를 담은 항아리들이 줄을 서서 단아하게 앉아 있었다. 대청마루의 다락에는 덩이차(茶)가 줄줄이 매달려 있었다. 다른 차실에서는 켜켜이 묵혀 둔 작은 차 단지들과 이쁜 소품들이 놓여 있었고, 또 다른 방에는 차 도구가 즐비했으며, 한옥의 문살 문양 창틀에는 천연염색의 가리개가 드리워져 있었다. 찻상들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좌식이 아닌 입식으로 놓여 있었다.
우리는 대청마루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으며 ‘다자연’의 녹차를 냉침하여 마시고는 이내 차실로 들어가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햇차를 시작으로 20년 된 발효차, 청차, 보이숙차, 보이차 고를 마시며 차벗들과 차 맛을 비교하고 품평했다. 또 한옥차실을 갖게 된 은사님을 축하해 드렸다. 언제든 차실을 이용할 수 있게 공간을 열어 놓겠다는 말씀에는 감사함을 전했다.

우리는 차를 마시면서 다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어떤 좋은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다이어트를 했는지 등등 궁금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그중 공통된 이야기는 서로가 서로에게 “그동안 못 만났던 세월 동안 훨씬 예뻐졌다”는 말이었다. 오랜만에 차벗들을 만나니 모두가 기쁨이고 행복이라, 그 마음 그대로 상대방을 바라보니 예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렇게 일곱 제자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밤 10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 돼서야 헤어짐을 준비했다. 모두 너무 반가운 시간이었다. 동산에 보름달이 크게 떠오르는 날 달빛차회를 기약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은사님과의 인연은 20년째다. 20년 전 친구와 은사님의 차 수업을 듣게 된 것이 인연이 되어 오늘에까지 이어져 왔다. 은사님은 차와 다식에 대한 수업을 많이 해 주셨고, 차를 좋아하는 사람의 인성은 늘 베풂으로 가득 차야 함을 알게 해 준 분이다.

가진 것을 나누려 하시고, 더 나누지 못함을 안타까워하시고, 늘 차벗들을 한량없이 아끼시고, 사랑하신다. 나는 은사님으로부터 배운 대로 실천하고자 나름 차 한잔이라도 나누고자 하지만 아직은 은사님의 그림자에도 따라가지 못한다. 그래도 은사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려 노력하고 은사님의 제자로서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려 애쓰는 중이다. 은사님께서 우리 지역 천년고찰 다솔사 아래에 터를 잡은 만큼 우리 지역을 위해, 차 문화 확산을 위한, 뭔가 뜻있는 일을 하지 않을까 내심 기대해 본다.

이번에도 은사님께서는 언제나 그러했듯이 우리를 빈손으로 보내지 않으신다. 한사람, 한사람에게 햇차 한 봉지씩과 직접 만든 다식들을 바리바리 싸 주신다. 나는 은사님으로부터 받은 귀한 차를 또 나의 차벗님 스무 명과 언제 한번 나눌꼬! 언제쯤 모임이 자유로울꼬! 언젠가 만날 그날을 위해 차가 잘 익어갈 수 있도록 항아리에 잘 보관해 둬야지. 그날을 기다리며 설레는 이 마음은 예순이 넘어도 어쩔 수가 없다. 마치 젊은 시절 연애하는 떨림처럼.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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