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주부가 시작한 재취업 도전기 (상)

‘항공기 기체 제작 과정’의 한 모습.
‘항공기 기체 제작 과정’의 한 모습.

 

[뉴스사천=정인순 시민기자] 삼십 대 중반에 시험관 시술을 결정하고 직장생활을 접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어렵게 얻은 아이는 집안에 안주할 충분한 핑계가 되었다. 적어도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전쟁 같은 육아를 겪으며 나를 잃어 갔다. 엄마로 아내로 며느리로 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 존재는 사라지고 그림자가 주인 노릇을 했다.

시간은 기다림을 모른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유치원·초등생의 학부모가 되고. 시간은 점점 더 속도를 내었다. 마침내 아이는 중학교에 입학을 하고, 나는 이제 밖으로 나가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다시 나를 찾을 시간이 된 셈이다.

마음이 달뜨고 뜨거워져 조급증이 났다. 쓰임새가 많은 사람이라 여겼고, 내가 필요한 곳이 어딘가 분명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성마른 착각이었다. 취업의 벽은 높고도 견고했다. 그저 ‘경력단절녀’라는 꼬리표를 단 나이 든 아줌마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할까? 시작을 할 수 있기는 할까?

절박하면 빛이 보인다고 했던가? 답답하고 막막해 낙담해 있던 중 생각지 못했던 곳에서 답을 찾았다. 바로 한국 폴리텍대학 항공캠퍼스에서 진행 중인 고용노동부 주도 중장년 재취업 항공인력 양성사업인 ‘항공기 기체 제작 과정’이다. 교육 시기도 기다리기라도 한 듯 잘 맞아떨어져 곧장 지원했고 운 좋게 면접에도 통과해 새로운 도전에 참여하게 되었다.

전국 35개 폴리텍대학에서는 특성에 맞는 다양한 교육과정들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곳 항공캠퍼스에서는 당연히 항공산업 관련 교육을 하고 있다. 여기서는 중장년 재취업 과정 외에도 여성 재취업 과정으로 ‘항공 생산 실무 과정’도 함께 진행한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처음 시작한 배경에는 2010년을 전후해 시작된 ‘베이비부머’ 세대의 대규모 은퇴가 있다. 베이비부머는 한국전쟁 직후인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로 한국경제의 고도성장에 앞장섰고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겪어야 했다. 이들 세대의 대규모 은퇴는 개인의 삶을 넘어 범국가적인 문제로 떠올랐다.

이에 정부에서는 이들이 은퇴 후 재취업 교육을 통해 안정적 노후설계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게 지원했는데, 이것이 ‘중장년 재취업 과정’의 시초였다. 2013년에 시작한 이 교육과정은 올해로 9년째를 맞았다. 지금은 40세 이상 65세 이하 실업자나 영세자영업자에게도 문이 열려 있다. 덕분에 내게도 기회가 왔다. 교육 훈련비 전액 지원, 훈련수당 지급에 일자리까지 알아봐 준다니, 놓칠 수 없는 기회라 여겼다.

강의 시작 첫날 걱정 반 기대 반, 약간의 설렘을 안고 강의실 문을 밀고 들어섰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사람들이 20명 남짓, 코로나 탓에 넓은 2인용 책상의 한쪽 편 자리에만 일렬로 쭉 앉아 있었는데, 생각보다 나이가 들어 보여 약간 당황스러웠다. 여름날의 녹음(綠陰)만큼은 아니더라도 아직 푸르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의 나이가 훅 들어와 마음의 동요가 일었다. 마스크 넘어 표정을 알 수 없는 눈빛들이 혼란스럽게 마주쳤다. 어색한 침묵이 불편하게 내려앉았다. 이윽고 첫 강의가 시작되고 서로의 통성명을 하고서야 비로소 익숙함 속으로 한 발짝 나아갈 수 있었다.

렌치니, 리벳이니 생소하기만 했던 용어들도 수업이 쌓여 가면서 조금씩 익숙해져 갔다. 교수님 질문에 제법 큰소리로 대답도 했다. ‘항공기 기체 제작 과정’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이론수업에선 항공기 기체 구조, 기체 재료, 기체 제작, 항공 엔진구조, 이착륙 원리, 배선 제작, 수공구 사용법을 비롯해 제조문서 작성, 기술자료 해독, 형상 설계 실습, 생산 현장 불량사례에 이르기까지 총망라해서 다루었다. 종합 실무실습 수업에서는 전자 조립과정인 항공용 배선작업, 기체 재료인 복합제 제조, 기체 제작 공정인 드릴링과 리벳팅, 항공엔진 연료노즐 장·탈착 등의 실습을 했다.

이렇게 거대하고 수많은 공정 속에서 나 같은 초보 일꾼이 투입될(취업이 된다고 가정했을 때) 곳은 가장 아래쪽 귀퉁이 어딘가쯤에 있는,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공정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만 전체과정을 교육시키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음을 알 것도 같다. 숲을 보라는 뜻일 거다. 전체 제작과정을 이해하고 있어야만 내가 하는 일을 정확하고 빠르게 실무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을 테니까.

<다음 호에 이어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