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섭의 배우며 깨달으며] 팬데믹 시대에 교육이 가야 할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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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섭의 배우며 깨달으며] 팬데믹 시대에 교육이 가야 할 길
  • 송창섭 시인
  • 승인 2021.06.22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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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섭 시인.
송창섭 시인.

[뉴스사천=송창섭 시인] 코로나19로 인해 우리의 삶은 엄청난 변화에 부대끼고 있습니다. 긍정적인 역할보다는 부정적인 영향이 더 크기에 인생 최대의 위기의식을 느낀다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아직도 이 세계적인 전염병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모든 이가 백신을 맞고 나면 또 다른 질병 걱정은 안 해도 괜찮은 지 시간이 흐를수록 미래에 대한 예측은 난해하고 불안합니다. 

팬데믹의 거센 소용돌이 속에서 미래 역사의 주인공들이 생활하고 있는 교육 현장은 어떨까요? 학생들 일부가 등교를 하고 있지만 여전히 비대면 수업을 받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비대면 교과 활동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그에 따른 염려와 부작용도 적지 않게 나타납니다. 직접 상담을 통한 사람됨 교육은 아예 기대할 수가 없을뿐더러, 효율적인 학습 효과 또한 거두기가 어려운 실정입니다. 이런 사유로 일부 학부모와 교육계에서는 학력 저하를 우려하고 있습니다. 학력이 떨어져 하향 평준화한다는 주장입니다.  

우리 교육이 지향해야 할 목표가 무엇인지 다시금 신중히 고민해야 할 시점을 맞이했습니다. 오래 전부터 여러 학자들은 우리 교육에 대한 충고를 지속적으로 해 왔습니다. 줄 세우기식 경쟁 구도를 깨야 한다, 사지 혹은 오지선다형 문제 풀기는 안 된다, 하나의 정답을 찾기보다 다양한 사고력, 잠재력을 발휘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등 많은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 교육의 현실을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신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해 온 교육으로는 아이들이 올곧은 민주 시민으로, 나아가 세계화global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역량을 갖추는 데에 한계가 있습니다. 

국어, 수학, 영어 성적이 다소 떨어졌다 하여 그게 큰 문제인가요, 아니면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틀에 갇혀 ‘이웃’을 모르고 ‘함께’를 모르는 삶이 더 큰 문제인가요?

성적으로 행복을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학력이 낮아졌다 하여 이것이 불행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누구의 삶도 완벽하거나 완전하지 않습니다. 평화롭고 정의로운 공동체 삶을 지향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대화하고 노력하는 자세와 성찰하는 시간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누구든지 아픔은 있을 수 있고 실패 역시 맛볼 수 있습니다. 아픔을 견뎌야 하는 슬기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실패하더라도 그 원인을 분석하고 극복하는 과단성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아픔도 실패도 우리가 품어야 하는 삶의 뿌리 굵은 밑거름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한 무리의 학생들이 운동장 한쪽에 가방을 모아 놓고 거닐며 재깔거리다가 웃다가 장난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푸른 하늘 아래 맑은 바람을 쐬며 새 소리를 듣는 아이들, 그들의 부푼 꿈이 하나씩 영글어 감을 봅니다. 해맑은 아이들이 힘차게 노는 그림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소설가 장 파울Jean Paul의 말입니다. “실패한 자가 패배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한 자가 패배하는 것이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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