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사천=최진정 사천중학교 교사] 20여 년 전 남해군 삼동면 물건중학교에서 근무할 때 맡은 업무 중 하나가 도서실 담당이었다. 도서실은 잘 가지도 않는 별관 2층에 교실과 똑같은 환경에 뒤편 벽면에 기울어진 서가만 등을 기대고, 먼지 앉은 책들을 몇백 권 안고 있었다. 냉난방시설도 없고, 이용하는 학생들도 없고, 거의 잊힌 시설로 방치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지리적 여건과 불편한 교통 사정으로 학교 수업을 마치면 운동장에서 놀거나 버스 시간에 맞춰 집으로 돌아갔다. 학력은 읍 지역에 비해 다소 떨어지는 편이었다. 

아이들에게 책 읽는 습관을 길러주기 위해 도서실을 정리 정돈하고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책을 샀다. 책을 편리하게 검색하고 독후감을 적는 습관을 기르도록 도서관 누리집을 만들고, 아이들의 도움을 받아 책을 등록했다. 먼지를 털고 책을 정리하고 등록하는 일에 아이들의 참여와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집에도 가지 않고 쫑알대며 도와주던 그 아이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런데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고, 멀리 수도권에 있는 낯선 졸업생이 연락을 해왔다. 사연은 ‘매일 물건 언덕을 넘는 등굣길에서 보는 풀들과 각종 식물의 이름이 궁금하여 선생님들께 여쭤보았는데 잘 아는 선생님들이 없어 무척이나 안타깝고 궁금했다’는 것. 그래서 앞으로 매달 책을 보내주겠다는 얘기였다. 책이 부족한 실정이라 아주 흔쾌히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보내주십사고 부탁을 드렸다.

이날 이후로 매달 30여만 원어치의 도서가 학교에 도착했다. 너무나 고마운 일이었다. 그 졸업생은 내가 4년 뒤에 학교를 옮길 때까지 약속을 지켜주었다. 또, 3년에 한 번씩 가는 수학여행에 후배들을 초청하여 대학로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듬뿍 사주며 반겨주셨다.

이렇게 도서실이 자리를 잡아갈 때 경상남도에서 시행하는 도서관 활성화 사업에 신청해, 5000만 원의 예산지원과 남해교육청, 남해군청의 지원을 받아 도서실이 아닌 도서관(교실 3칸과 복도를 합쳐 75평)을 만들었다. 아이들이 연극과 공연을 할 수 있도록 무대를 만들고 인터넷이 연결된 컴퓨터를 8대 정도 설치하고, 아이들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과 쉴 수 있는 아늑한 공간을 마련했다.

아이들이 방과 후에도 이용할 수 있게 밤 9시 30분까지 도서관을 개방하고, 선생님들이 돌아가면서 아이들을 돌보았다. 전교생 45명 중에 50% 이상이 야간 독서 활동에 참여했다. 동무들끼리 서로 문제지를 풀어가며 문제해결력을 키워나가는 모습이 너무 보기에 좋았다. 물론 결과도 좋아, 기초학력 진단평가에서 우수학교로 선정됐으며, 남해군에서 실시하는 학예대회에서도 다방면에 걸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저녁 늦게까지 아이들과 운동도 하고 책도 보고 게임도 하며 아이들이 성장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는 기쁨과 보람이, 아이들을 일일이 집까지 태워다 주고 홀로 돌아와야 했던 나날의 수고보다도 훨씬 컸다는 생각이다.

이런 행복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거의 매일 교무실을 방문해 이야기를 나누고 가시는 적극적인 학부모님, 멀리서도 고향에 있는 모교의 소식을 듣고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음에도 도움을 주셨던 졸업생, 그리고 행복한 일터를 만들려고 애썼던 교직원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리라. 후배 교사들과 함께하며 민주적으로 학교를 운영하고자 노력했던 한 교장 선생님도 행복한 시절의 배경으로 남아있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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