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파이프라인

'파이프라인' 영화 포스터.
'파이프라인' 영화 포스터.

[뉴스사천=배선한 시민기자] 종종 ‘시대를 앞서간 음악’, ‘시대를 앞서간 패션’ 같은 기사를 접하곤 하지만 그건 예술적 감성이 뛰어난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보통 사람들은 유행을 따라잡기도 벅차다. 물론 모든 사람이 트렌디함을 좇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유행에 뒤떨어졌다는 소리는 듣기가 싫은 법이다. 왠지 고리타분하다는 말과 맥이 닿아 있는 뉘앙스여서 그렇다. 그런데 대체로 유행은 보통의 감성보다 한걸음 앞서간다. 흔히 말하는 셀럽들이나 연예인들이 유행을 선도하는 모양새지만 모든 예술의 영역에서 속된 말로 ‘아방’한 감성은 미덕에 속한다. 끊임없이 새로움을 갈구하는 대중적 욕구의 산물이다. 영화도 예외일 수는 없다.

<파이프라인>은 유행보다는 지나간 시간, 옛날의 공간 그리고 그 속의 시대정신과 감수성을 묘파하는데 탁월한 재능을 가진 유하 감독의 신작이다. 기름을 훔친다는 의미의 ‘도유’라는 소재는 그 단어만큼이나 낯설다. ‘도유 범죄’는 송유관에 구멍을 내 기름을 훔치는 범죄를 의미하며 영화적 소재로는 충분히 신선하다는 뜻인데, 유하 감독의 감성과 노련미가 더해지면 꽤 멋진 영화 한 편이 탄생할 수도 있으리란 기대감이 자연스레 생긴다. 7년이라는 공백 기간을 거친 터라 더욱 그렇다.

유하만의 방식으로 푸는 타고난 이야기꾼의 화술은 여전하다. 생각지 못한 새로운 소재를 포장지 삼아 기시감 가득한 진부한 캐릭터와 낡은 이야기를 덮었다. 오락영화가 갖춰야 할 덕목을 꼼꼼하고 치밀하게 탑재해 케이퍼 무비로도 적격이다. 사실 신선한 소재를 신선한 이야기로 푸는 데는 모험이 필요하다. 시대를 앞서나간 비운의 명작이 될 수도 있고 소수의 지지로 버텨야 하는 컬트 무비가 될 소지도 다분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파이프라인>의 방향 선택은 영리했다고 할 수 있겠다. 유하 감독의 노련함은 묵직한 메시지나 새로운 형식에 대한 탐구 대신 팬데믹 시대의 우울함을 날려버리는 통쾌한 케이퍼 무비와 결합한 셈이다. 잘한 선택인지는 장담할 수 없으나 유쾌하고 적절한 선택임은 분명해 보인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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