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민주항쟁 34주년 특별 대담: 그날의 ‘사천 함성’을 떠올리다

전 서부경남민주시민협의회 공동대표, 오태열 목사 증언
“사천성당에서 목사들이 함께 군정 종식 기도회…유례 없었다”
‘사천시, 진주군’?…“사천 기독교계의 빠른 대응에서 나온 말
 
 
오는 6월 10일은 유월민주항쟁 34주년이 되는 국가기념일이다. 이렇듯 뜻깊은 날임에도 지금까지 사천에서는 이를 기념하거나 역사를 반추하는 행사가 특별히 없었다. 경남서부권에선 대체로 진주를 중심으로 유월민주항쟁의 역사를 기록해온 탓이다. 이에 뉴스사천은 늦으나마 사천의 눈으로 1987년 유월민주항쟁을 들여다보려 한다. 당시 서부경남민주시민협의회 공동대표였던 오태열 사천중앙교회 담임목사와 진홍근 (사)경남유월민주항쟁정신계승시민연대 이사의 대화를 박남희 시민기자가 기록했다. -편집자-
 
 
오태열 사천중앙교회 담임목사(사진 왼쪽)가 진홍근 (사)경남유월민주항쟁정신계승시민연대 이사(사진 오른쪽)가 대담을 나누고 있다.
오태열 사천중앙교회 담임목사(사진 왼쪽)와 진홍근 (사)경남유월민주항쟁정신계승시민연대 이사(사진 오른쪽)가 대담을 나누고 있다.

 

대담자

오태열 사천중앙교회 담임목사 / (전) 사천시기독교연합회 회장, (전) 서부경남민주시민협의회 공동대표

진홍근 (사)경남유월민주항쟁정신계승시민연대 이사



: 오랜만입니다. 목사님을 뵈니 34년 전, 그 뜨거웠던 6월의 함성이 바로 어제 일처럼 귓가에 쟁쟁합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 성직자인 만큼 목회에 충실하며 살았지요. 교육학과 사회복지학을 전공해 20여 년 동안 대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 1987년 당시 경상대생들이 남해고속국도 사천 구간을 점거하면서 경찰과 대치하는 과정에서 11톤 LPG 수송차량을 징발하거나, 진주 시내에서 가좌캠퍼스로 후퇴하는 과정에서 열차를 막아서는 등 서부경남에서의 유월민주항쟁은 격렬하고 크게 일어났습니다. 당시에 이미 조선일보나 중앙일보 사회면을 대문짝만하게 장식했고, 미국 언론도 보도하였다고 들었습니다. 당시 사천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요?

: 사천에서는 사천중앙교회와 사천성당을 중심으로 박종철 군을 고문 치사한 경찰과 국가공권력을 규탄했습니다. 특히 사천성당에서 허철수 신부와 개신교 목사들이 함께한 군정 종식을 위한 공동기도회는 읍지역에서 유례없는 뜻깊은 경험이었습니다. 고 김영식 신부, 허철수 신부와 저는 유월항쟁 무렵 ‘서부경남민주시민협의회’ 공동대표를 맡아 민주화 시위에 참여했습니다.

: 당시 대학 하나 없던 사천지역에서 천주교와 개신교, 특히 개신교가 조직적으로 유월민주항쟁을 전개한 것은 참 놀랍습니다. 어떻게 가능했는지요?

오태열 사천중앙교회 담임목사 / (전) 사천시기독교연합회 회장, (전) 서부경남민주시민협의회 공동대표
오태열 사천중앙교회 담임목사 / (전) 사천시기독교연합회 회장, (전) 서부경남민주시민협의회 공동대표

 

: 전두환 신군부가 88올림픽을 빌미로 4·13호헌조치를 강행하면서 직선제 개헌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로, 한국사회는 군정 종식을 요구하는 시위로 불에 달군 가마솥처럼 뜨거워지고 있었습니다. 사천에서도 70여 개 교회로 구성된 ‘사천군 기독교연합회’가 한목소리를 내고자 하였으나 정치 중립을 내세운 반대에 부딪혔지요. 어쩔 수 없이 10여 명 뜻을 같이하는 목사들만 허철수 신부와 ‘사천군성직자협의회’를 조직했습니다. 제가 총무를 하고, 당시 사천읍교회 성태언 목사께서 회장을 맡아서 군정 종식과 직선제개헌 요구 시국기도회를 열고, 진주에서 일어나던 시위에도 동참했습니다. 

: 1987년 6월 23일 진주강남교회에서 있었던 ‘군정 종식과 직선제개헌을 위한 기도회’에도 목사님이 참여했던데, 사연을 말해주십시오.

: 형평운동에서 봉래동 진주교회의 역할은 유명한 이야기입니다만, 1987년 당시 진주지역의 교회들은 매우 보수적이었습니다. 진보적인 목회자들과 의식 있는 신도들 사이에서는 ‘사천시, 진주군’이라는 말도 돌았습니다. 어쨌든 서부경남의 중심이랄 수 있는 진주에서도 기도회를 개최하기로 했고, 교회를 물색했습니다. 그리하여 진주역 부근에 있던 진주강남교회에서 목회자 이삼백 명이 모여 시국기도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 이미 고인이 되셨습니다마는, 옛 진주판문교회 전노진 목사가 생각납니다. 진주판문교회는 작은 교회였으나 문익환 목사의 한신대 동기면서도 완전히 다른 길을 갔던 고 강명찬 목사가 쥐락펴락하던 교회여서 한국기독청년회 간부를 경험한 고 전노진 목사께서 많이 힘들어 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전 목사님의 장인이자 부산 민주화운동의 거목, 최성묵 목사와의 인연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십시오.

: 제가 최성묵 목사님을 사천중앙교회로 초청해 군정 종식 기도회와 강연회를 열었습니다. 최 목사님의 강론과 토론을 통해 민주화운동과 기독교 역할에 대해 많이 배우기도 했고요. 그때 저는 최 목사님께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요. ‘이번 대통령선거에 노태우 씨가 당선될 것이니 군정 종식은 어렵고 다음 선거에서 문민정부가 들어선다’는 것이었습니다. 

: ‘군정 종식이 어렵다’는 최 목사의 말씀에 크게 반발하셨던 것으로 압니다. 최 목사께서 그 당시에 그런 말씀을 하셨던 이유가 뭘까요?

: 당시 주한 미 대사인 릴리가 부산에 와서는 최 목사님 사택에서 하룻밤 묵고 자며 그렇게 말했다는 겁니다. 노태우 씨 다음 대통령부터 문민정부가 될 것이라는 말은 당시 저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죠. 그래서 저는 “목사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우리가 싸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군정 종식이 아닌가요? 대다수 국민의 요구가 아닙니까?”라고 따졌습니다. 그런데 릴리의 말대로 김영삼과 김대중 양 김이 분열되고, 대선 직전 칼(KAL)기 폭파사건과 함께 김현희가 입국하더니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되었습니다. 그다음엔 ‘보수대연합 3당 합당’으로 김영삼 씨가 대통령이 되더군요.
 

진홍근 (사)경남유월민주항쟁정신계승시민연대 이사
진홍근 (사)경남유월민주항쟁정신계승시민연대 이사


: 네. 그렇게 유월민주항쟁 뒤엔 노태우 정권이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89년이던가요? 지금 생각해도 조작이랄까, 의문투성이인 사건이 여럿 발생했었죠. 전교조 사무실에 북한찬양 플래카드가 나붙거나 ‘남도주체사상연구회’라는 지하조직 사건도 있었죠. 그즈음에 북한에 갔던 고 문익환 목사 때문이었을까요?

: 노태우 씨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만든 ‘국면전환용’이었다고 저는 의심합니다. 이른바 ‘공안통치’지요. 그때 첫 검찰총장이 김기춘이었는데, 공안검찰, 대공경찰, 안기부, 보안사 등을 모아 공안합수부라는 법외 조직을 꾸렸습니다.

: 당시 민주주의 진영에서는 공안합수부의 공안통치를 ‘총성 없는 쿠데타’, ‘포고 없는 계엄’으로 정의한 바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유월민주항쟁 이후에 군복을 양복으로 갈아입고 명을 연장한 군정이 벌인 짓입니다. 1988년 목사님이 공동대표로 계셨던 서부경남민주시민협의회와 진주지역총학생회협의회 등이 4·3제주항쟁 40주년을 맞아 개최한 집회에 경찰이 난입하면서 노동자, 학생, 시민 등 50여 명이 중경상을 입은 기억이 생생합니다.

: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는 말이 있습니다. 희생한 만큼 지키고 공들여 가꾸어야 합니다. 유월항쟁 이후의 공안통치는 민주주의가 역행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1989년 공안합동수사부에 지명수배를 받던 이철규 대학생의 의문사가 떠오릅니다. 그때 100여 명의 경상대생과 사천읍내 재래시장을 중심으로 가두시위를 벌였던 기억이 또렷하네요. 

: 네. 그때의 일이 알려지면서 ‘내년에는 유월항쟁 기념 표지석을 사천에 세우자’는 여론이 일고 있습니다. 경상대 민주광장, (구)진주시청에 이어 서부경남에서는 세 번째가 되는 셈인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좋은 일이면서 당연한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록해야 ‘역사’입니다. 신채호 선생께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했습니다. 4·19혁명과 5·16쿠데타, 부마·광주항쟁, 12·12 및 5·17쿠데타, 유월 민주항쟁과 공안 통치 등 민주주의는 순행과 역행을 거듭했고, 앞으로도 반복될 수 있습니다. 유월민주항쟁을 기념하는 표지석은 민주주의의 역행을 막는 상징적 보루가 될 겁니다. 위치를 정하는 것에서부터 시민과 공감대를 형성하겠습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