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시인, 일제 강점기 신수도 주민 '야학·계몽'에 힘써

남양동 출신 시조시인 우보 박남조(朴南祚, 1909~1989) 선생을 기리는 시비 제막식이 스승의 날인 5월 15일 오후 1시30분 신수도 선착장 일원에서 열렸다.
남양동 출신 시조시인 우보 박남조(朴南祚, 1909~1989) 선생을 기리는 시비 제막식이 스승의 날인 5월 15일 오후 1시30분 신수도 선착장 일원에서 열렸다.

[뉴스사천=강무성 기자] 사천시 남양동 출신 시조시인 우보 박남조(朴南祚, 1909~1989) 선생을 기리는 시비 제막식이 스승의 날인 5월 15일 오후 1시30분 신수도 선착장 일원에서 열렸다.

‘우보 박남조 선생 시비 건립 추진위원회(위원장 황인성)’는 이날 선생의 시비를 세워, 우보 박남조 선생의 발자취를 되짚고 그의 정신을 기렸다. 이날 행사에는 신수도 주민과 지역 문인, 시비 건립 추진위 관계자 등이 함께 했다. 

이날 김학명 시비 건립추진위 총괄이사는 경과보고에서 “2020년 최송량 시인의 시비가 노산공원에 세워지고 난 후, 박남조 시인의 시비가 세워졌으면 좋겠다는 논의가 있었다”며 “2020년 10월 추진위가 결성되고, 오늘(5월 15일) 신수도에 시비 조형물이 세워지게 됐다. 뜻깊은 행사에 참석해주신 내빈과 신수도 주민들께 감사 인사 올린다”고 말했다. 

기념사를 하고 있는 황인성 위원장.
기념사를 하고 있는 황인성 위원장.

황인성 위원장은 “우보 박남조 시인의 삶의 역정과 작품에서 일제강점기 이후 어둡고 고단했던 우리 현대사를 거쳐 오면서 자신의 영달을 앞세우지 않고 가난하고 어려운 민중들과 함께 지역사회의 운명을 개척하고자 했던 참된 지식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뜻있는 분들의 정성을 모아서 우보의 시를 돌에 새겼다. 암울한 식민지 상황 속에서도 지역민들과 일체가 되어 새로운 세상을 개척하고자 한 우보의 애민정신과 변혁의지를 되새기고, 향토문화를 아끼고 사랑한 그의 노력을  후세들이 본받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유족 대표 박상만 씨가 보내온 글에서 “제 부친의 시비 건립을 추진해 주신 추진위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 올린다”며 “언제나 신수도와 삼천포를 사랑하고, 문학과 문화를 아끼신 선친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당신의 정신이 사천에서 다시 활짝 만개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정삼조 시인은 “우보 선생은 남을 위해 봉사한다는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작은 일이라도 그것을 몸소 실천하시던 분이었다”고 회고했다.

우보 박남조 시인 시비
우보 박남조 시인 시비
우보 박남조 시인 시비
우보 박남조 시인 시비

박남조 선생은 경남사범학교 3학년 때 항일 운동을 하다 필화 사건으로 퇴학당한 후, 일제강점기 말까지 13년 동안 신수도에서 보명학회(普明學會)를 세워 신수도 주민 500여 명을 대상으로 야학과 계몽운동에 헌신한 인물이다.

​1990년 마루문학 창간호에 실린 우보 박남조 시인의 모습.​
​1990년 마루문학 창간호에 실린 우보 박남조 시인의 모습.​

박 시인은 193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젊은 開拓者(개척자)」라는 단편소설로 입선하며 등단했다. 저서로는 1979년에 발간한 시조집 『바닷가에 살면서』, 1985년에 삼천포 민요를 손수 채집한 『내 고향(故鄕) 민요(民謠)』가 있다. 1955년 삼천포문인협회장, 1958년부터 1964년까지 3,4,5회 예총삼천포시지부장을 역임하는 등 사천 문학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해오던 박 시인은 1989년 지병 악화로 타계했다.

박남조 시인 시비 건립추진위 단체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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