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호(사천시 향촌동)
이용호(사천시 향촌동)

[뉴스사천=이용호] 등대를 만나러 간다. 늘 뭍에서만 바라보다가 막상 만나러 가려니 쉽지 않다. 긴 방파제를 따라 걷다보니 난간도 없고 해풍의 성가심도 여간 아니어서 긴장하지 않으면 추락의 위험도 뒤따른다. 간혹 갈매기 배설물이라도 뒤집어쓰면 최악의 고행이다.

그러나 재미 또한 쏠쏠하다. 빨강과 흰색이 한 쌍으로 서 있는 등대는 마치 오작교를 사이에 둔 견우와 직녀처럼 간절한 사랑의 표상 같다. 그곳으로 가는 길은 그래서 설렌다. 찰랑거리는 파도 향기가 융단처럼 퍼지고 멀어지는 뭍의 경계가 외계로 떠나는 듯 아련해지는 생경함은 경이로운 경험으로 이어진다. 독립된 섬처럼 우뚝 솟은 등대는 오동통한 실루엣으로 낯선 신비감을 안겨준다. 원색의 강렬함 위로 갈매기 한 마리 날아드니 이국의 화룡점정이다.

등대를 안아본다. 한 바퀴 둘러본다. 그리고 가만히 등을 댄다. 등을 대라고 등대일까? 마치 콘센트에 플러그를 꼽은 듯 전기가 흘러 등대불이 켜질 것만 같다. 따스한 무언가가 전해지는 이 기댐의 평화. 살면서 누군가에게 어딘가에 편안하게 등을 대 본 적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벽면에 빼곡하게 적힌 낙서들이 따스한 사연이 되어 한 장 한 장 연극을 시작한다.

살다보면 등을 대는 일이 많다. 등을 돌리는 일과는 다르다. 등을 돌리는 것은 외면이고 배신이다. 돌려야할 사연은 있겠지만 그로인해 마음의 상처를 입고 돌이킬 수 없는 후회의 나락으로 빠지는 게 등을 돌리는 일이다. 가장 뜨거운 심장의 반대편을 보여줌으로써 차가운 비수를 꽂는 일이다. 오랜 우정과 인연이 하루아침에 풍비박산 나는 게 등의 악역이다. 가슴만큼 넓고 듬직한 등의 존재를 우리는 차가운 비수로 내미는 슬픈 현실을 안고 산다.

그와 반대로 등을 댄다는 것은 기댐이요 나눔이고 배려다. 심장의 온기가 달구어진 등을 통해 누군가에게 무엇에게 접목함으로써 하나가 되는 연결선이다. 고된 일상의 무게를 등에 기댄 채 또 다른 등의 포용을 통한 공감의 행위야말로 정화요 치유다. 고요히 등을 기대고 마주 앉아 내 이야기를 전하고 너의 이야기를 느끼는 일은 평화다. 누군가의 힘겨운 등을 토닥여주고 고단한 어깨를 기댈 수 있게 내주는 등은 그래서 신의 영역이 아닐까.

어둠이 밀려오는 어스름 저녁. 등대는 불을 밝힌다. 불빛을 통해 노동의 터널을 달려온 만선의 하루를 위무한다. 그뿐이랴. 빨간 등대는 빨간불을 하얀 등대는 초록불을 밝혀 지친 어선의 종착을 마중한다. 바다에서 항구로 들어올 때 배는 빨간 등댓불의 왼쪽으로 초록불의 오른쪽으로 들어옴으로써 방파제 등 장애물에 부딪히는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 견우와 직녀이면서도 떨어질 수 없는 운명의 역할을 아름답게 수행하고 있는 등대의 노고가 아름답다.

시나브로 봄의 길목이다. 역병을 안고 온 겨울도 치유될 것이다. 지치고 잃어버린 일상의 복귀가 기다려지는 봄, 만남이 설레는 것은 아마도 외면하지 않고 배신당하지 않은 우리들의 따스한 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의 지친 등을 기꺼이 내 등에 기댈 수 있게 마음을 나누어준 배려 덕분이다. 다시 등대를 안아본다. 등을 기대본다. 설렘의 불빛이 따스하게 밀려오는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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