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삼조 시인.
정삼조 시인.

[뉴스사천=정삼조 시인] 설이 눈앞에 닿았다. 아이 때에는 설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먹을 것이 많고 새 옷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른바 세뱃돈도 더러 생기니 평소 욕심나던 것을 넘볼 수도 있었다. 

어느덧 나이를 먹고 보니, 이 설 쇠는 일이 만만치 않다. 어릴 때 누렸던 것들을 갚지 않을 수 없다. 옛날에 나를 돌봐주셨던 이들이 돌아가셨거나 노쇠했으니 그 갚음이 더욱 만만치 않다. 제사도 지내드리고 나이 든 분들은  찾아뵙는 것이 도리다. 

내 아이도 훗날 그리하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표나지 않게 모범을 보일 수밖에 없다. 이 사람 사는 일의 순환이 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흔히들 설을 말할 때 송구영신(送舊迎新)이라는 말을 쓴다. 옛것을 보내고 새것을 맞는다는 뜻이리라. 말 그대로라면 세상사 아무 어려움이 없겠다. 민간에는 섣달그믐날까지는 묵은 빚을 청산해야 한다는 불문율이 내려져 왔다. 하지만, 아무개한테 돈을 빌렸으니 그 빚을 털고 새해를 맞는 일은 돈이 목적인 사람들에게나 기계적으로 통용되는 말이 아닐까. 

빚에는 마음이 덤으로 딸려 있으니 그것이 문제다. 그 마음을 흔히 정성과 사랑이라는 말로 바꾸어 표현하기도 한다. 이 정성과 사랑은 돈으로 갚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옛것은 보낼 성질의 어떤 것이 아니다. 마음에 두고두고 쌓여 날로 커져만 가는 빚이다. 그럼에도 옛사람이 옛것을 보내자고 한 것은 혹시 옛것에 얽혀 진취적인 새것을 놓치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뜻이 숨어있는 것은 아닐지 모를 일이다.

설을 맞아 예년에는 고향 방문을 했을 사람들이 그것을 자제해 달라니까 관광지로 몰려간다는 말이 들린다. 아닐 것이다. 설날에 굳이 관광지를 찾는 사람들은 아마도 일의 본말(本末)을 잠시 착각한 사람들이거나, 피치 못할 무슨 사정이 있는 사람들이리라.
 
설을 맞이하는 마음을 담담히 노래한 시로 김종길 시인의 시 「설날 아침에」를 같이 읽어보았으면 한다. 옛날 국어교과서에 실려 낯익은 시일 것인데도 인연이 닿지 못한 분들은 물론이고 익힌 지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가물한 분들 모두에게 설날의 의미를 다시 새기게 해 줄 시라 믿는다.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 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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