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고 낯선 우리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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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고 낯선 우리말 (3)
  • 송창섭 시인
  • 승인 2020.12.22 15: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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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섭 시인.
송창섭 시인.

“커피 나오셨습니다.” 마치 커피가 높은 지위에 있거나 나이가 많은 어르신 같습니다. 커피를 마시는 주체를 높여서 그런 것인지 아무튼 이런 표현도 기형어라 하겠습니다. 그냥 “커피 나왔습니다.” 하면 무난하지 않을까요. “오천 원 되시겠습니다. 오천 원이십니다. 그릇/불판이 뜨거우십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정말 불편하고 이상하지 않습니까. 상대를 아무리 존중한다 해도 말의 예절은 지켜야겠지요. 두말할 필요 없이 “오천 원입니다. 그릇/불판이 뜨겁습니다. (조심하세요. 조심하십시오.)”라고 해도 전혀 예의에 어긋나지 않습니다.  

“이쁘시느라 수고가 많습니다.” ‘이쁘다’는 상태를 나타내는 형용사입니다. ‘-느라’는 “동사의 어간이나 선어말 어미 ‘-(으)시-’의 뒤에 붙어, 그 행동을 실현하기 위해 애쓴 것이 원인이나 이유가 되어 뒤에 오는 절의 사실이 일어났음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언어 파괴가 멋있어 보일런지는 몰라도 적어도 상태에 쓰는 말과 행동에 쓰는 말은 구분해야 되지 않을까요. “약은 지금 오고 계세요.” 이쯤 되면 소도 웃지 않을 재간이 없겠지요. “약은 지금 가져오고 있습니다. 약은 곧 도착할 겁니다.”라고 하면 뭔가 좀 이상하나요. 

다음 같은 표기도 동공을 확장시키기에 충분하지요. ‘사흘’을 ‘4흘’로, ‘이틀’을 ‘2틀’로, 이렇게 쓴 기사가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아니, 4흘이라 했으니 연휴가 토, 일 포함해서 화요일까지지 왜 월요일까지냐?” 누군가 의아하게 여겼다는 후문입니다. 이런 것까지 설명해야 하는 상황에 헛웃음이 튀어나옵니다. 

“3분만 일찍 왔어도 됐을 텐데.” 이 말은 ‘3분’을 ‘삼분’으로 읽느냐 ‘세 분’으로 읽느냐에 따라 의미가 사뭇 다릅니다. 삼분으로 읽으면, 출발 시각보다 늦게 도착하여 그만 차를 타지 못한 사람의 푸념쯤으로 이해해야겠지요. 세 분으로 읽으면 어떨까요. 친선 축구 경기를 앞두고 선수 세 분이 늦게 오는 바람에 경기가 순연하거나 취소되어 아쉬움을 토로하는 느낌을 줍니다. 숫자를 한글로 읽느냐 한자어로 읽느냐에 따라 미묘한 쓰임의 차이가 나타납니다.  

같은 뜻의 말을 완전히 반대되는 의미로 쓰는 사례는 어떻게 봐야 할까요. ‘10년 앞, 10년 전前’ 앞말은 앞으로 살아갈 미래로, 뒷말은 이미 살아온 과거로 해석합니다. 슬기로움인지 순발력인지 헷갈립니다. 참 특이한 쓰임이지요.  

근래에 급속히 유행을 타며 방송에서조차 거리낌 없이 쓰는 ‘1도’의 개념 역시 다양합니다. “① 고용주로서 노동자를 배려해 준 적이 1도(한 번도) 없었다. ② 달동네에서 어렵게 살던 시절 그렇게 형제가 많지만 누구 1도(한 사람도) 도움을 주지 않았다. ③ 친구가 아프다는 데도 1도(한 놈도) 나타나지 않았어. ④ 여기에 모이신 회원들은 1도(한 분도) 빠짐없이 동참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⑤ 내가 원하는 물건이 1도(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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