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삼조 시인.
정삼조 시인.

우연한 일로 박재삼 시인의 수필집을 뒤적거리다 낯익은 부분이 눈에 띄었다. 이 이야기 속 주인공이 우보 선생이리라는 짐작이 가고 뒤이어 우보 선생의 시조집 『바닷가에 살면서』(1979년) 중, 박재삼 시인이 쓴 발문(跋文)에 같은 내용이 언급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박재삼 시인의 제5수필집 『너와 내가 하나로 될 때』(1984년) 중 「작아도 단단한 것」이란 글의 서두에 실려 있다. 아래 인용한 것이 그 내용이다.

"내 고향에는 70을 넘긴 선배이자 지방시인 한 분이 계신다. 그분은 지금도 정정해서 웬만한 젊은이보다 팔 힘도 세고, 술도 그들에 못지않다. 그분은 길에 휴지가 떨어져 있으면 꼭 줍는 것을 즐거이 한다. 그러나 그분은 남몰래 하고 있다. 그야말로 왼손이 하는 것을 오른손이 모르게, 그런 사소한 일이 남에게 알려져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사실, 마땅한 선(善)을, 또 아무렇지 않은 일을 대단하게 선전하는 것이 쑥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앞서 두어 번 이 지면에 우보 선생(1909년 생)을 소개한 적이 있다. 그분이 경남사범학교 3년 때 한 필화사건으로 인해 퇴학당한 후 일제강점기 말 무렵까지 13년 세월을 당시 오지였던 신수도에서 보명학원을 세워 야학과 계몽운동에 헌신한 일, 193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젊은 開拓者(개척자)」라는 단편소설이 입선한 일, 우리 고장 민요집 『내 故鄕(고향) 民謠(민요)』와 앞서 언급한 시조집을 낸 일, 우리 고장의 각종 문화 문학 행사에 봉사해 온 일 등이다. 그러면서 당신은 평생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고, 급기야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안타깝게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풍문에 들렸다.

우보 선생을 기려 앞서 6월에 최송량 시인 시비를 노산에 세우는 데 앞장섰던 이 지역 출신 몇 사람이 그 공적비를 신수도에 세우는 등 우보 선생 기념사업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반가운 소식을 접하며 우보 선생의 시조집에 실린 「사람은 가도 나무는 큰다」라는 작품을 소개한다. ‘삼천포초등학교 개교 60주년을 기념하여’라는 부제가 달렸는데 후학을 아끼는 선생의 충정이 드러나 있다.

“너와 나 같이 심은/ 저 뜰앞 정자나무/ 찬 서리 비 바람 속/ 예순 넘어 자랐어라/ 큰 뿌리/ 잔 뿌리 펴고/ 큰 몸둥 가지 번져.// 春三月(춘삼월) 薰風(훈풍)따라/ 오고 가던 친구들아/ 우거진 나무 그늘/ 뛰고 쉬던 수만 얼굴/ 우리는 개구쟁이들/ 숱한 웃음 잎새 숨고.// 뱃고동 울림 속에/ 바다 냄새 몸에 젖는/ 그대 지금 어느 하늘 밑/ 잃은 童心(동심) 鄕愁(향수) 짓나/ 어린 넋 자란 옛 터전/ 사람은 가도/ 나무는 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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