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는 사천의 역사와 문화 이야기: 사천과 마고할미

‘드문돌’, ‘빨랫돌’, ‘덩덕궁 바위’

늑도와 주문마을의 마고할미 이야기

다른 곳처럼 관광 자원화 안 될까?

 

늑도에서 실안 방향으로 바라본 모습. 바다 한가운데 누군가 갖다 쌓은 것 같은 바윗돌을 ‘드문돌’이라 부른다. 바윗돌이 일정하게 줄을 지은 모습에서 새삼 마고할미의 전설을 떠올린다.
늑도에서 실안 방향으로 바라본 모습. 바다 한가운데 누군가 갖다 쌓은 것 같은 바윗돌을 ‘드문돌’이라 부른다. 바윗돌이 일정하게 줄을 지은 모습에서 새삼 마고할미의 전설을 떠올린다.

올여름 지리산에 들른 적이 있다. 그곳에서 천황사에 ‘마고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천황사에 올라 ‘마고상’을 찾았다. 높이 75㎝, 너비 46㎝ 정도의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조각상이었는데,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 내 눈에는 너무 가엽고 초라해 보였다.

이 ‘마고상’은 ‘마고(麻姑) 할미’의 전설에서 유래한 것이다. 마고할미는 우리나라와 중국의 전설에 등장하는 존재로, 신기한 능력을 가졌다고 묘사된다. 우리나라에선 지리산의 여신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아무튼 이 마고할미에 얽힌 전설이 사천에도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사천의 마고할미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사천에서 마고 할미의 전설이 있는 대표적인 곳은 늑도와 용현면 주문마을이다. 이 가운데 삼천포 앞바다에 있는 늑도를 얼마 전 찾았다. 이곳에서 들은 마고할미에 얽힌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지리산에 살던 과부 할머니가 남해 바닷가로 유람을 나왔다가 늑도가 아름답고 사람들의 인심이 좋아 눌러살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은 과부 할머니가 늑도 주민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물었더니, ‘육지로 가는 다리가 필요하다’고 하므로, 과부 할머니는 늑도에서 삼천포 실안 쪽으로 돌다리를 놓기로 했다. 한창 작업을 하던 중에 지나가던 거북이가 과부 할머니를 보고 ‘물길이 막히면 물고기들이 다닐 길이 없어진다’고 하자 과부 할머니는 일손을 멈추었다. 마을 사람들에겐 육지로 가는 돌다리보다 먹을거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탓이다. 이에 할머니는 마을사람들에게 ‘앞치마가 헤어지고, 힘이 떨어져서 못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늑도를 조용히 떠났다.”

이 이야기는 늑도 주민들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인데, 사천시사에 올라 있는 전설과는 조금 다른 부분이 있다. 참고로 사천시사 제12편 민속, 제2장 구비문학, 제2절 설화 부분에는 ‘드문돌 바위에 실린 이야기’가 있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과부 할머니와 앞선 지리산 과부 할머니는 둘 다 전설 속의 마고할미로 볼 수 있다.

마고할미에 얽힌 늑도의 또 다른 바위 ‘빨랫돌(=서답돌)’. 썰물 때만 모습을 드러낸다.
마고할미에 얽힌 늑도의 또 다른 바위 ‘빨랫돌(=서답돌)’. 썰물 때만 모습을 드러낸다.

전설이나 신화가 그렇듯, 지금의 눈으로 봤을 때는 과장되거나 비현실적으로 들리는 대목도 있다. 하지만 이야기의 소재가 될만한 게 오늘날 늘 남아 있기 마련이다. 늑도에서 만날 수 있는 건 드문돌과 서답돌이다. 드문돌이란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 돌무더기를 부르는 이름이다. 그리고 서답이란 빨래를 뜻하는 말이므로 서답돌은 곧 빨랫돌인 셈이다.

늑도에서 실안 방향에 있는 드문돌은 정말로 누군가가 돌다리를 만들기 위해 쌓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사이가 끊어져 있어 전설이 만들어질 정도의 크기는 아닌 것 같아 마을 주민 중 한 분에게 돌다리에 관한 이야기를 물어보았다. 그분은 뜻밖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자신이 어렸을 때 돌다리는 지금보다 2배로 크고 길었다고 한다. 그러나 선착장 공사를 하면서 그 돌들을 부숴 선착장 공사에 이용하고 지금 것은 그때 사용하고 남은 것들이라 하였다. 실제로 남은 돌에는 깨어진 흔적이 남아 있어 그의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것처럼 보였다.

전설이 담긴 돌다리가 부숴졌다면 이는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진주 금곡면 두문리 주민들은 금곡면과 사천읍 금곡리 사이에 있던 ‘마고할미 물렛돌’을 1957년 무렵 공군부대에서 뽑아 갔던 것을 되찾아와 그 자리에 다시 세워 놓았다고 한다. 마고할미 전설이 서린 이 물렛돌은 지금도 두 지자체의 경계석 역할을 하고 있다는데, 우리도 곱씹어 볼 이야기다.

반면 늑도의 빨랫돌은 그대로 남아 있다. 주민의 안내로 그 돌을 보러 갔는데, 마침 운이 좋았다. 이 바위는 물이 들면 보이지 않고 썰물 때만 보인단다. 물이 반쯤 들면 마치 바다 한가운데 빨래터 같은 돌의 윗부분만 보이기에 붙은 이름이다.

드문돌과 빨랫돌을 보고 돌아나가려니 안내했던 주민이 물었다.

“누구 하나 찾지 않고 묻지 않는 곳인데 어찌 우리 마을 이야기에 관심을 두느냐?”는 물음이었다. 딱히 답할 말이 없어서 “언젠가 전설을 알리는 안내판이라도 하나 섰으면 좋겠네요”라고만 하고 돌아섰다.

마고할미가 늑도로 향하다 잠시 쉬어갔다는 ‘덩덕궁 바위’. 용현면 주문마을 앞바다에 있으며, 밀물 때는 물에 완전히 잠기기도 한다.
마고할미가 늑도로 향하다 잠시 쉬어갔다는 ‘덩덕궁 바위’. 용현면 주문마을 앞바다에 있으며, 밀물 때는 물에 완전히 잠기기도 한다.

이어 간 곳은 용현면 주문마을이다. 이 마을의 앞 바닷가에는 ‘덩덕궁 바위’가 있는데, 이곳에 얽힌 전설을 요약하면 이렇다.

“지리산을 나와 ‘늑도’로 향하던 마고 할미가 잠시 앉아서 쉬어간 바위가 있다. 그 바위 가운데에는 사람의 엉덩이에 꼭 맞는 구멍이 하나 있는데 그 구멍을 ‘마고 할미 똥단지’라 부른다. 그런데 주문마을의 윗마을인 금문마을에서 거문고를 치면 그 구멍에서 ‘덩덕궁’ 소리가 난다고 하여 그 바위를 덩덕궁 바위로 이름 지었다.”

이 또한 마고 할미와 관련이 있는 전설이다. 이 바위에 얽힌 다른 이야기도 많았다. 바위에 난 구멍안으로 머리를 넣은 한 청년이 마고 할미에게 잡혀 구멍 안으로 빨려들어 갔다든지, 그 바위를 부숴 둑을 쌓으려다 낭패를 본 이야기 등이다. 어쩌면 이 바위에 얽힌 전설은 현재진행형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곳에도 흔한 안내판 하나 보이지 않았다.

사실 마고할미는 우리나라 곳곳에서 전설로 만날 수 있다. 단양팔경 중 ‘석문’, 거제 ‘둔덕거성’, 용인 ‘할미산성’, 삼척 ‘서구암’ 등이다. 이들 지자체에선 하나 같이 마고할미를 관광에 접목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도 마고할미 전설을 관광에 접목해보는 건 어떨까. 늑도의 드문돌과 빨랫돌, 주문마을의 덩덕궁 바위에 얽힌 이야기를 더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 연재 끝.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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