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이황과 관포 어득강의 추억 품은 ‘까치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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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과 관포 어득강의 추억 품은 ‘까치섬’
  • 공대원 시민기자
  • 승인 2020.10.2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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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사천의 역사와 문화 이야기: 작도정사(鵲島精舍)

관포의 초청에 한걸음에 달려온 퇴계

광포만 갯벌 풍경 즐기며 시를 읊다

두 스승의 만남을 기리는 ‘작도정사’

사천시 서포면 외구리에 있는 까치섬의 작도정사(鵲島精舍) 안쪽 풍경. 관포 어득강과 퇴계 이황의 기억을 품고 있다.
사천시 서포면 외구리에 있는 까치섬의 작도정사(鵲島精舍) 안쪽 풍경. 관포 어득강과 퇴계 이황의 기억을 품고 있다.

나른한 토요일 오후, 바람을 쐴 겸 곤양천 하구에 있는 광포만에 들렀다. 광포만은 넓은 갯벌과 갯잔디 군락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 생태적 가치에 주목해 최근엔 국립공원 지정 움직임도 일고 있다.

하지만 20세기 초만 하더라도 광포만의 모습은 지금 같지 않았다. 제방 너머에 펼쳐진 넓은 들판도 곧 갯벌이었다. 광포만과 육지를 가르는 제방은 1938년에 들어섰다. 일본사람 야마다(山田)라는 사람의 지휘로 쌓았는데, 이때 만든 제방의 길이가 오 리(=2㎞)에 달해 ‘오리방천’이란 이름이 붙었고, 이곳 주민들은 지금도 그렇게 부르고 있다.

이 ‘오리방천’의 탄생으로 갯벌의 상당 부분이 농지로 바뀐 데 이어 ‘까치섬’이라 불리던 작은 섬도 육지의 가운데로 자리 잡게 됐다. ‘까치섬’은 곧 ‘작도(鵲島)’로, 서포면 서포로 633(=외구리 105-1번지)에 해당한다. 이곳 바로 앞으로는 58번 지방도가 지나는 만큼 접근성도 괜찮은 편이다.

작도정사(鵲島精舍) 현판.
작도정사(鵲島精舍) 현판.

그런데 ‘오리방천’ 제방이 들어서기도 전인 1925년 무렵, 지역 유림들이 ‘작도’에 작은 건물을 짓고 ‘작도정사(鵲島精舍)’라 불렀다. 외딴 섬으로 있던 이곳에 유림들은 왜 이런 건물을 지었을까. 그리고 이 건물은 어떤 쓰임새가 있는 걸까. 이를 살피기 위해선 시계추를 500년쯤 뒤로 돌려야 한다.

1533년, 곤양 군수로 있던 ‘관포 어득강(灌圃 魚得江 1470~1550)’ 선생이 자신보다 30세 넘게 어린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 선생을 초청했다. 어득강 선생의 초청에 이황 선생이 응했던 모양이다. 안동에서 출발해 처가가 있는 의령 가례를 지나 진주에서 청곡사, 촉석루를 둘러보고 곤양으로 오게 된다.

당시 64세였던 어득강 선생이 23세였던 이황 선생을 초청한 것은 나이를 떠나 뜻이 같으면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지 싶다. 그렇게 긴 시간에 험한 길을 거쳐 곤양 땅에 닿았을 이황 선생. 그는 곤양에서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 그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는 글을 이황 선생이 남겼다. 「昆陽陪魚觀圃游鵲島是日論潮汐」의 글이다. 풀이하면 ‘곤양에서 어관포를 모시고 까치섬에서 노닐면서 조수에 관해 이야기했다.’쯤이 되겠다. 이어지는 본문도 있는데, 한자를 생략하고 풀이한 뜻만 간단히 옮긴다.

‘까치섬은 곤양군 남쪽 십 리쯤에 있다. 섬 양쪽으로 두 개의 산이 대치하고 있어 문(門)과 같고, 조수가 이로부터 드나드니 섬을 고리하여 팔구 리를 돌면 바다가 되고, 조수가 물러가면 육지가 된다. 이날 어부들이 그물을 드리우고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은 정사인 세호와 이생원 분과 강생원 공저 및 황과 배를 타고 상류와 중류로부터 그물을 치고 있는 장소에 이르렀다. 선창에 내려서 보니 어부들이 출몰하고 큰 고기가 뛰어오르니 가히 즐길 만하더라. 조수가 물러날 때에 이르니 모두 배를 두고 섬으로 올랐다. 점심때가 지나서 배를 띄운 곳을 돌아보니 다 평지가 되고 까마득한 황무지가 주렴 그물에 가리어 은은할 따름이었다. 이에 조수의 이치를 이야기하면서 회를 쳐서 술을 마시다가 날이 저물어서 파하였다.’

까치섬을 서쪽에서 바라본 모습. 사진은 봄에 촬영했다.
까치섬을 서쪽에서 바라본 모습. 사진은 봄에 촬영했다.

이 글의 주된 배경이 바로 ‘까치섬’이다. 이곳에서 넓은 갯벌 풍경을 즐겼으며, 어부들의 고기잡이를 관찰했던 셈이다. 나아가 회도 즐겼단다. 훗날 지역의 유림들은 이황 선생의 ‘까치섬’ 방문을 기념하고 싶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작도정사’인 것이다. 이후 허물어진 것을 1954년에 지역 유생들이 다시 세웠고, 현재는 곤양향교에서 관리하고 있다.

이러한 연유로 ‘작도정사’ 입구에는 작도유림계(鵲島儒林契)에서 세운 표시석과 1997년에 사천시장이 세운 ‘퇴계이선생 장구소(退溪李先生 杖屨所)’라는 비석이 있다. 장구소(杖屨所)라는 말은 ‘장구지소’라는 말로 ‘지팡이를 짚고, 짚신 또는 가죽신을 신고 거쳐 간 곳’이란 뜻이다. 그냥 지나간 길이 아니라 머물면서 가르침을 준 곳임을 강조한 말이기도 하다. 

작도정사(鵲島精舍) 바깥 풍경.
작도정사(鵲島精舍) 바깥 풍경.

‘작도정사’가 있는 섬에 오르면 소나무 숲 사이로 좁은 길이 나타난다. 이 길을 따라 들어가면 ‘솟을대문’이 나오고 대문 안으로 들어서면 정면 4칸, 측면 2칸의 기와집이 나온다. ‘작도정사’다. 벽면에는 ‘작도정사’를 처음 건립할 때 참여했던 유림들의 이름이 정성껏 적혀있다. 무너진 건물을 1954년에 곤양향교에서 다시 건립했다는 기록도 있다. 특히 이곳에는 이황 선생의 13대 종손인 하정(霞汀, 1872~1951) 공이 1931년 봄에 새겨 걸어놓은 시가 있으니, 그 시를 끝으로 소개한다. 물론 이 시도 이황 선생이 썼다고 전한다.

鵲島平如掌 까치섬은 편편하니 손바닥 같고

鰲山遠對尊 금오산 멀리 술병을 마주한 듯

終朝深莫測 아침이 맞도록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고

自古理難原 예로부터 이치로 원리를 알기 어렵다고 하였네

呼吸地爲口 땅은 호흡하는 입이 되고

往來山作門 산은 드나드는 문이 지어졌네

古今多少說 예나 지금이나 많고 적은 말들을

破的意誰言 깨뜨리고 밝힌즉 그 누구가 다 말하랴.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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