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향만리] 갈대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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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향만리] 갈대의 시
  • 정삼조 시인
  • 승인 2020.10.20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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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삼조 시인.
정삼조 시인.

글의 제목을 ‘갈대의 시’라고 적어놓으니 흡사 갈대가 노래한 시라는 뜻으로 읽힐 수도 있겠다. 딴은 가을날 고개 숙인 갈대는 시를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과 닮아있을 듯하기도 하다. 깊어가는 가을의 정서를 노래함에는 갈대만 한 소재가 없으리라고 앞선 글에서 이미 피력한 바 있지만, 그 글에서는 한 대중가요의 가사만 언급했기에 이번에는 가을의 갈대를 노래한 시를 소개함으로써 가을과 갈대의 서정을 마무리 짓고자 한다.

갈대를 노래한 시로는 아무래도 신경림 시인의 시가 가장 많이 읽히지 않나 싶다. 이 시인이 스무살 무렵에 썼다 한다. 제목은 「갈대」다. 시 전문을 소개한다.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젊은 시절의 시라 그런지 감성이 매우 두드러진 시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지도 모르겠다. 이성은 합리적이지만 사람들은 때로 사랑의 유혹에 빠지듯이 감성의 늪을 찾곤 한다. 이 시에서는 유독 인생을 아픈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늘 울음으로 흔들리는 삶의 모습, 즉 이별이 있고 아픔과 죽음이 있는 세상을 갈대는 또는 사람은 견뎌내면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계절의 막바지, 깊어가는 가을날에 사람들은 때로 고개 숙여 인생의 의미를 나름대로 생각해 볼 법하다. 그런 어떤 날의 마음 상태를 시인은 갈대를 매개로 하여 노래한다.

다음 소개할 ‘갈대의 시’는 박재삼 시인의 「아름다운 천」이다. 짝사랑의 실패나 그 쓰라림을 아무도 모르는 ‘아름다운 천’으로 곱게 간직하며 가을날 갈대 소리에나 그 마음을 의탁해 본다는 것이다. 역시 전문을 소개한다.

“나는 그대에게/ 가슴 뿌듯하게 사랑을 못 쏟고/ 그저 심약한, 부끄러운/ 먼 빛으로만 그리워하는,/ 그 짓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죽을 때까지/ 가리라고 봅니다./ 그런 엉터리 사랑이 어디 있느냐고/ 남들은 웃겠지만,/ 나는 그런 짝사랑을 보배로이 가졌기 때문에/ 아무도 모르는 비밀로 짠/ 아름다운 천을 두르고 있다는 것이/ 이 가을,/ 갈대소리가 되어 서걱입니다./ 가다가는 기러기 울음을/ 하늘에 흘리고 맙니다.”

진정한 의미의 짝사랑은 아마 상대방도 몰라야 하리라. 그것은 세상에서 오직 나만 아는 것이어야 하고, 아무도 모르는 것이기에 보배로운 비밀로 남을 수 있는 것이다. 그 아름다움은 나만이 가꿀 수 있는 것이다. 그 아픔이 얼마만 하랴. 그러나 갈대소리 서걱이거나 기러기 울음 들릴 때마다 이 사랑의 마음은 더 아름답게 커가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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