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섭 시인
송창섭 시인

해가 뉘엿뉘엿 서녘 하늘을 스칠 때면 이따금씩 모자랑포毛自郞浦가 있는 바닷길을 향합니다. 일렁이는 은빛 물결이 잔잔하면서 포근함을 줍니다. 잠시 넋을 놓다가 옷을 갈아입습니다. 발끝부터 머리까지 가볍게 움직이며 준비 운동을 하고는 물 한 모금 마십니다. 호흡을 조절하고 전신을 톡톡 두드리면서 세포들을 일깨웁니다. 고개 젖혀 먼 하늘을 한번 바라본 뒤 해안길을 따라 뜀박질을 시작합니다. 삼천포종합운동장을 비롯해 와룡골, 실안 노을길 등 좋은 곳이 여럿 있지만 특별히 이곳을 더 자주 찾곤 합니다. 나름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요.  

경남 사천에는 삶에 찌들거나 지친 심신을 위로하기에 혹은 자연을 음미하며 마냥 걷기에 몰입할 수 있는 이순신 바닷길이 있습니다. 1코스 사천 희망길, 2코스 최초 거북선길, 3코스 토끼와 거북이길, 4코스 실안 노을길, 5코스 삼천포 코끼리길이 바로 그것입니다. 주변에 인가가 드문 곳도 적지 않아 지루한 면도 있지만, 한적하고 차분한 풍경은 신선하고 활기찬 혈액을 공급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최초 거북선길’이라 이름 붙인 2코스는 선진리성에서 종포마을, 대포마을, 미룡마을을 거쳐 모자랑포 그리고 모충공원에 이르는 12km 거리를 가리킵니다. 그 가운데서도 제가 가장 즐기며 다니는 구간은 현재 우리장례식장이 있는 곳부터 종포마을까지의 6.8km 길입니다. 

길 따라 걸음 따라 구간 여정을 함께해 보겠습니다. 맨 먼저 약한 내리막길을 만납니다. 이어서 가슴을 탁 틔게 하는 바다가 계절에 맞춰 갈매기와 해오라비, 청둥오리, 검은머리물떼새 등 다양한 조류를 거느리고 나타납니다. 미룡마을에 이르면 썰물로 인해 해수면이 가장 낮은 간조 때엔 바다의 속내인 갯벌을 보게 됩니다. 마을 아주머니들이 조개를 캐느라 여념이 없는 모습도 낙조와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토합니다. 거꾸로 밀물이 닥쳐 해수면이 가장 높은 만조 때엔 풀떡 뛰는 고기와 함께 낚시꾼의 세월 낚기가 한몫 펼쳐집니다. 이때 부는 해풍에 옷과 머릿결이 펄럭입니다. 짭조름한 갯바람이 온몸을 적시며 머리를 맑게 순화시키고 살아 있는 생명체임을 느끼게 합니다. 

대포마을에 들어서면 앞바다에 사시사철 떠 있는 돔하우스식 해상황토펜션이 눈에 띕니다. 잔잔한 수면 위에서 낚시를 하며 석양을 완상하는 그림은 이국적인 정취를 풍깁니다. 7월부터 9월 사이엔, 후각을 자극해 사람 발길을 눌러 붙게 만드는 한바탕 전어 잔치가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조선 정조 때 실학자 서유구가 전북 고창의 어족에 관해 지은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를 보면, ‘전어는 가시가 많지만 육질이 부드럽고 씹어 먹기에 좋으며, 기름이 많아서 맛이 좋다. 상인들이 소금에 절여 한양으로 가져와 파는데 신분의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모두 좋아하므로, 값을 생각하지 않고 사기 때문에 전어錢魚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맛이 천하일품이라는 얘기지요. 

또한 ‘가을 전어 머리에는 깨가 서 말이다, 전어 냄새 맡고 집 나간 시어머니 돌아온다, 가을 전어는 며느리 친정 갔을 때 문 잠그고 먹는다,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 돌아온다, 봄은 도다리요 가을은 전어다, 가을 전어 구이 냄새에 자살마저 포기한다, 가을 전어 한 마리면 햅쌀밥 열 그릇 죽인다, 전어 냄새가 나야 가을이 시작된다’ 등 전어와 관련한 속담도 여럿이니 그 맛을 두고 가타부타 한다면 이는 쓰잘머리 없는 잔소리에 지나지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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