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 포스터.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 포스터.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형용사의 조합이 때로는 이보다 더 이상 좋을 수 없을 만큼 핵심을 관통하기도 하고, 멋짐을 뿜뿜하기도 한다. 첫 출근하는 신입 직원의 달콤한 두려움이나, 수능을 앞둔 수험생의 그늘진 여유로움이나, 로또 한 장에 거부가 된 듯 소리치는 이의 어설픈 호기로움처럼 말이다.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을 연출한 신정원 감독이 그렇다. 감독 데뷔작인 <시실리 2km> 이후 <차우> <점쟁이들>까지 그의 필모그래피는 뭔가 ‘이상하고’ ‘짜릿하며’ ‘공포스럽지만’ ‘웃긴’ 오묘한 정서로 가득하다. 어울리지도 않고 정돈되지도 않은 이 이상한 형용사들의 조합이 신정원 감독을 갈파하는 키워드로 작용한다. 때문에 그가 만든 영화는 호불호가 갈린다.

B급 정서의 영화는 시장이 그리 크지도 않아서 자주 제작되지도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신정원 감독의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에 대한 시네필의 기대는 반가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라이터를 켜라>의 장항준 감독이 각본으로 합세했고 양동근, 이정현, 이미도라는 개성파 배우들이 나선다고 하니 얼마나 멋진 웃기는 짬뽕이 탄생할까 하는 기대는 높아져만 간다. 

내세우는 장르가 SF/코믹/스릴러인데, 이 중 하나만 멱살 잡고 끌고 갈 수도 있고 근본 없이 뒤섞는 것에 일가견 있는 감독의 장점이자 연출 특징을 잘 살려서 혼합하기만 해도 본전은 건질 수 있지 싶은 게 사실이다. (이미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라는 작품이 SF/코믹/스릴러라는 장르로 극찬을 받은 선례도 있지 아니한가) 

말을 이렇게 장황하게 하는 이유는 기대치에 도무지 닿질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총체적 난국’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준비된 표현인가보다. 스토리는 산으로 가고, 아이디어는 혼자 놀고, 이 와중에 배우들만 고군분투할 뿐이다. 아무래도 감독은 그저 판만 깔아놓은 채 방기한 것처럼 보인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발상은 참신하지만 응집력이 없다. 타이밍 맞춰서 적절하게 터지는 한 방도 없다. B급 코드의 속성이 취향에 따른 호불호 편향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속 시원하게 웃을 수 있는 장면이 나와야 설득력을 가질 텐데 이마저도 없다. 어정쩡한 복선과 웃음 코드는 코믹이라는 장르를 무색하게 하며, 바지를 올리다 만 건지 내리다 만 건지 모를 엉거주춤한 자세로 SF와 스릴러를 쳐다보고만 있다.

그 와중에 말하면 입 아픈 대세인 빌리 아일리시의 ‘Bad guy’는 그야말로 찰떡처럼 화면과 달라붙는다. 그나마 마지막 쿠키 영상은 또 다른 재미가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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