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는 사천의 역사와 문화 이야기: 옛 시로 만나는 ‘사천’

단골 소재는 ‘와룡산’·‘삼천진’

고려 현종과 그의 아버지도 등장

‘옛 시인의 눈으로 사천을 보다’

18세기에 편찬된 해동지도 속 사천의 모습. (자료=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18세기에 편찬된 해동지도 속 사천의 모습. (자료=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사천시는 오늘날 우주항공산업과 해양수산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우주항공산업이 비교적 최근 들어 새롭게 입은 옷이라면, 해양수산업은 오래된 옷이다. 그리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 해양과 관광이 만난 해양관광산업이다.

사천의 해양관광산업을 떠올리며 사천만을 따라 걷다 보니 문득 ‘옛 사람들은 어디서 무엇을 보며 즐겼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우리가 보는 풍경과는 사뭇 달랐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그래서 몇몇 고지도를 뒤적였다. 하지만 산길과 물길 중심으로 구성된 고지도만으로는 옛 풍경을 다 헤아리기가 힘들었다. 이에 다시 떠올린 것이 사천을 주제로 지은 고시(古詩)이다. 마침 내가 찾던 안성맞춤의 시 몇 편을 발견하게 되어 이 지면에 소개하려 한다. 옛 선인들의 글(=시)에서 만나는 ‘사천’이다.

조선의 개국공신이며, 경제와 문장에 뛰어났던 구정 남재(龜亭 南在) 선생은 1396년 도병마사로 대마도 정벌을 했던 시기에 사천 와룡산 능화봉에서 시 한 편을 남긴다.

“臥龍山在南海陬(와룡산재남해추) 와룡산은 남녘 바다 언덕에 있어 / 王子當年作遠遊(왕자당년작원유) 왕자는 그 해에 먼길을 떠나야만 했네. / 古塚漸平荒草合(고총점평황초합) 오래된 무덤은 점점 황폐한 잡초 속에 묻혔으니, / 寒鴉啼送夕陽愁(한아제송석양수) 겨울 까마귀 울면서 석양 속 근심 알려주네.”

한때 고려의 장수였던 지은이는 아마도 고려 시대 왕욱(현종의 아버지)의 마음을 돌아본 것 같다. 고려 현종(8대 왕)과 관련된 시로는 조선 시대 문신으로 남해와 사천에서 유배 생활을 했던 성옹 김덕함(醒翁 金德諴) 선생께서 남긴 것도 있다. 그는 구계서원에 제향된 인물이기도 한데, 그가 지은 시는 ‘와룡산’이다.

“慰問臥龍山(위문와룡산) 와룡산에 대해 물어 보는데, / 臥是何意思(와시하의사) 와는 무슨 뜻 이련가? / 直待三顧日(직대삼고일) 줄곧 기다리며 삼고초려 하던 날, / 快挾風雲起(쾌협풍운기) 오직 믿고 의지하니 영웅호걸 일어난다.”

또 조선 전기 문신으로 명나라 사신 기순(祁順)과 시 대결을 펼쳐 중국에까지 알려진 사가정 서거정 (四佳亭 徐居正) 선생은 사천의 풍광을 둘러보며 이러한 시를 남긴다.

“南來武處不淸游(남래무처불청유) 남으로 오매 고상한 놀이 못 할 곳 없어라 / 隱映鼇岑近海頭(은영오잠근해두) 심신산이 보일락 말락 바다와 근접하였네. / 孤島煙橫深水晩(고도연횡심수만) 외딴 섬 비낀 연기 속에 심수도(=신수도)는 석양이요 / 荒城日落角山秋(황성일낙각산추) 황량한 성에 해 떨어져라 각산은 가을일세. / 驚濤夜感蛟龍窟(경도야감교룡굴) 거센 파도는 밤에 교룡굴을 흔들어 대고 / 殘雪香留橘柚洲(잔설향유귤유주) 남은 눈 속에 향기는 유자 물가에 풍기네. / 珍重斯文楊太守(진중사문양태수) 진중도 하여라 사문의 양 태수는 / 一樽談笑亦風流(일준담소역풍유) 술자리의 담소 또한 풍류스럽네.”

이 시의 제목이 ‘사천’이라면, 조선 시대 문신으로 임진왜란 때 호조판서를 역임하다 전란 중에 병사한 졸옹 홍성민(拙翁 洪聖民) 선생은 ‘삼천진’을 노래하는 시를 남겼다.

“扁舟來泊三千鎭(편주래박삼천진) 조각배 타고 와서 삼천포 진(鎭)에 묵으니, / 一棹能輕萬頃天(일도능경만경천) 노 하나로도 능히 너른 바다를 빨리 달릴 수 있었네. / 擊罷空明還獨立(격파공명환독입) 공격 그치니 맑은 물에 비친 달만 여전히 홀로 있어, / 此身初訝便登仙. (차신초아편등선) 이 몸 제일 먼저 영접하니 곧이어 신선 되어 오르리.”

사천만 노을. 사천의 옛 선현들도 이런 풍경에 좋은 시상을 떠올렸나 보다.
사천만 노을. 사천의 옛 선현들도 이런 풍경에 좋은 시상을 떠올렸나 보다.

사천에서 아름다움만 보지는 않았나 보다. 조선 시대 문신으로 이덕형‧이항복과 함께 ‘3학사’로 불리던 계은 이정립(溪隱 李廷立) 선생은 계미년 가을, 경상우도의 말을 점검하기 위해 삼천진에 머물면서 이런 시를 남겼다.

“會讀夔州百韻詩(회독기주백운시) 기주 <백운시>를 깊이 읽어보니, / 三千流落最堪悲(삼천유낙최감비.) 삼천포 타향살이 슬픔 가장 잘 나타나 있다. / 誰知今日病司馬(수지금일병사마) 누가 알겠는가? 오늘날 병조판서의 근심을 / 還似當年舊拾遺(환사당년구습유) 여전히 예전에 임금께 쓴소리하던 시절과 같으니 / 十月亂洲爭吐出(십월난주쟁토출) 시월의 물가 어지러운 다툼 토해내듯 / 九潮殘水亦多時(구조잔수역다시) 구조의 어지러운 모습 또한 오래되었다. / 羈孤一臥偉床枕(기고일와위상침) 외로운 나그네 침상 멀리하고 누웠으니, / 杜曲桑麻倍夢思(두곡상마배몽사) 두곡의 뽕과 삼밭 꿈속에서도 더욱 그립다.”

이밖에도 와룡산이나 사수 등을 소재 삼아 사천을 읊은 옛 시는 여럿 더 있다. 앞서 소개한 구정 선생(龜亭 先生)의 11대손인 호곡 남용익(壺谷 南龍翼) 선생이 남긴 ‘何年玉節按南陬(하년옥절안남추: 몇 년의 벼슬살이 남쪽 기슭 보살피니)’로 시작하는 시와, 생육신 중 한 사람인 추강 남효온(秋江 南孝瑥) 선생이 사천에 머물다 떠나면서 지은 ‘黃葉囱前暗響乾(황엽창전암향건: 누른 낙엽 창 앞에서 바스락 소리 내니)’로 시작하는 시 등이다. 사천의 역사와 문화, 특히 한시에 관심 있는 분들은 찾아서 읽어보길 권한다. 참고로 이 글에서 소개한 한시와 번역문은 한국고전번역원에 올라온 글임을 밝혀 둔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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