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맛으로 영혼이 부르다 (4) - 버스 차장의 서글픈 자화상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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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맛으로 영혼이 부르다 (4) - 버스 차장의 서글픈 자화상 ③
  • 송창섭 시인
  • 승인 2020.09.22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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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섭 시인.
송창섭 시인.

지금도 여전히 서민의 삶은 악화일로입니다. 원초적으로 먹고사니즘 곧 먹고사는 일을 최우선으로 하는 태도조차 소유하지 못하는 삶이라 여기니 억장이 무너지지 않고 어찌 배기겠습니까. 
인권살이는 어떨까요, 예전보다 많이 개선되었을까요. 어떤 사안이 발생하면 이때다 싶어 여기저기서 문제 제기하고 질타하고, 마치 자신의 생각은 온당하고 최고인 양 말, 말, 말로써 떠들어 대는 무리들 많이 보았지요. 백마 타고 온 구세주처럼 혹은 정의의 사도 황금박쥐인 양 목소리를 높입니다. 과거의 판박이가 변함없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셈이지요. 

옛 문제 하나 풀어 볼까요. 
* 개문발차 사고가 일어났다. 누구에게 잘못이 있고 책임이 있는가?    
①버스 차장  ②승객   ③운전기사     ④회사 사장     ⑤ 교통부장관 

개문발차 사고(開門發車 事故)란 문을 열고 차가 출발하여 일어난 사고를 말하며, 갑자기 일어난 좋지 않은 일을 비유하여 쓰기도 합니다. 더러 개집의 문을 발로 차서 생긴 사고 또는 개가 문을 발로 차서 낸 사고라 말하는데, 이는 장난삼아 우스갯소리로 하는 것일 뿐 사실이 아닙니다. 물음의 답을 찾는 것이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어리석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긴 질문 자체가 구체적인 정황 설명도 없이 책임만을 추궁하는 것 같아 불손하다 싶기도 하지요.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건 답이 여지없이 ①번 버스 차장이란 겁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연이은 질문이 나올 법도 하지요. 이유나 근거 따위는 아무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못 배운 거, 돈 없는 거, 힘없는 거 그게 이유이고 정답일 따름입니다.  

아픔이 크기에 푸념조로 내뱉는 버스 차장이었던 그녀의 인간적이고 사실적인 고백을 한편 더 곱씹어 보겠습니다. 

우리같이 못사는 노동자 빈민을 위해 / 부자집 사모님들께서 / 입다가 싫증난 멀쩡한 헌옷을 주셨다 / 서민에 자존심이 있어 / 얻어 입을 수는 없고 분명히 내 돈 주고 샀다 / 결혼한 지 육 년 된 헌 색시 울 언니 / 헌옷 주워 입어 보면서 / 좋아서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 200원씩 주고 이렇게 멀쩡한 옷을 샀는데 / 아직 삼 년은 입을 수 있다며 좋아라 한다 / …… / 내 팔자에 어디 이런 옷 구경이나 하겠냐며 / 얼마나 잘 살기에 이렇게 좋은 옷을 입지 않고 버리냐며 / 그런 여자들도 살림하는 사람이며 / 서방이 뭐 하는 사람인지 부러워한다 / 헌 색시 울 언니 헌옷 입고 맵시 내고 / 헌 서방 형부 시큰둥하고 / 헌옷 얻어 입고 헌 동생 된 내 자존심은 / 기쁜 언니 앞에서 헐어빠진 가난을 깁는다           - 「헌 식구」

단지 헌옷을 예시로 들었을 뿐 이는 단순한 헌옷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때 금수저와 흙수저 논란이 있었지요. 일상적으로 쓰는 숟가락, 젓가락에도 빈부귀천의 언어가 따라붙습니다. 새로운 계급, 계층 구조가 형성되었다는 증거인 셈이지요. 

‘인간으로 살고 싶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부르짖음이 강한 의미로 날아와 온몸에 꽂힙니다. 그들이 원하는 진정성을 조금이라도 헤아려 주길 바라는 간절함이 짙게 배어 있습니다. 이 같은 고단한 현실은 버스 차장들만의 서글픈 자화상은 아닐 것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함께하는 삶이요, 인간답게 사는 길인지 냉엄하게 돌아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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