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벤또’를 까먹어 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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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벤또’를 까먹어 보셨나요?
  • 이용호(사천시 향촌동)
  • 승인 2020.09.1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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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촌동 이용호
향촌동 이용호

코로나19가 좀체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아 추석 연휴를 앞두고 또다시 걱정과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단계별로 시행되고 산발적 깜깜이 확산도 이어지고 있어 가을 민심이 평온치 않다.

이런 세파를 반영하듯 슬기로운 홀로생활이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집콕’이 가장 확실한 방역 수칙으로 인식되고, 혼자 밥 먹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일상 속 먹거리 공간도 제약을 받는 상황이라, 간편하게 한 끼를 해결하려는 혼밥족을 위한 도시락 수요가 덩달아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편의점 도시락은 물론이고 전문 브랜드와 배달식 식당 도시락까지, 바야흐로 도시락 전성시대다. 요즘 도시락은 엄마 밥 같은 향수와 정성을 담은 고급 식재료를 섞어, 때우는 한 끼가 아니라 즐기는 한 끼라는 이미지로 변신했다. 도시락은 간편하면서도 맛과 영양을 모두 담은 고품격 한상이 됐다. 

그러고 보면 도시락은 예나 지금이나 인기 있는 먹거리의 요람이었다. 도시락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어를 차용한 ‘벤또’라는 이름으로 귀에 익숙하다. 도시락은 예전엔 어머니의 사랑과 가난, 추억으로 대변되는 상징적 역사였다. 특히 학창시절 도시락에 서린 추억은 밤낮을 털어놓아도 모자랄 정도였다.

꽁보리밥, 김치와 콩나물무침으로 중무장한 도시락은 간혹 달걀 프라이와 멸치볶음, 소시지가 가미된 최고의 성찬으로 변신해 유년의 배고픔을 달래 주었다. 짭짤한 김치 국물이 늘 배여 있었던 교실엔 겨울 난로마다 층층이 쌓인 양은 도시락이 온기를 더해 줬다. 십분마다 도시락을 교체하지 않으면 타버려 점심을 망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맛있는 반찬을 싸 온 친구들 주변에는 늘 젓가락 전쟁이 벌어졌다. 김치와 고추장으로 버무린 도시락을 흔들어 비빔밥을 만들어 먹는 통에 점심시간은 축제의 장이었다.

수저를 까먹고 와서 친구가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리는 아이들도 있었고, 잘 사는 친구들은 아예 보온 도시락에 따뜻한 국물까지 넣어와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2교시가 끝나고 도시락을 까먹은 친구들은 점심시간에 능청스럽게 보시를 다니기도 했다. 도시락을 싸오지 못한 친구들도 더러 있어서  도시락을 기꺼이 나눠 먹기도 했다.

빈약한 반찬에 주눅들 때도 있었지만, 유년의 도시락은 친구들과의 동질감으로 늘 행복한 먹거리였다. 무엇보다 그 속에 깃든 어머니의 사랑이 따스했고, 꽁보리밥이나마 담아올 수 있었던 게 그저 다행스러웠다. 봄, 가을 소풍날 싸주시던 김밥은 도시락 로망의 결정체였다. 달달한 사이다와 몽실하게 삶은 달걀까지 더해지면 그날은 보물찾기에 사활을 걸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요즘은 학교 급식이 보편화되어 도시락의 추억은 사라졌다. 점심끼니 걱정은 덜었으니 다행이지만, 엄마표 도시락 추억은 사라져 아쉬움이 남는다. 최근에 아내가 가끔 도시락을 싸준다. 코로나19 여파도 있지만 간편식을 먹는게 걱정되는 모양이다. 도시락 반찬에 신경을 쓰다 보니 아침이 분주해지지만, 도시락에 깃든 찰진 정성과 손맛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다시 한 번, 유년의 맛있던 그 ‘벤또’를 까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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