愛. 20×15. 2020.
愛. 20×15. 2020.

“딸아, 지금 바로 오십만 원만 좀 보내줄 수 있어? 엄마에게는 비밀이다. 이유는 묻지 말고!”

“왜요? 어떻게 묻지도 않고 돈을 보내요? 아빠 보이스피싱 당했어요?”

“아니, 카드 값으로 나가야 하는데 그 정도가 좀 모자라서...”

결국 ‘그 정도’ 라는 말에 더 여윳돈이 필요하시겠다 싶어 백만 원을 보내며 무슨 일일까 몹시 궁금했다. 아빠의 비밀이라 지켜 드리고도 싶었다. 얼마 뒤 울산에 사는 남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누나, 아빠가 무슨 일이 있으시기에 며느리에게 백만 원을 급하게 보내달라는 거야? 남편이랑 시어머니에게 비밀로까지 하라면서?” 

그래, 이쯤 되면 조사 들어가야 하는 거다. 부모님은 여유로운 노후를 보내고 계신다. 밥벌이 하나씩 제대로 차게 삼남매를 키우셨고, 당신들의 노후준비도 든든하시다. 거기에다 여든의 나이에 건강까지 하시어 개인택시를 하시며 그 용돈으로 여러 취미생활을 즐기신다. 그런데 무슨 돈이 이리 급히 필요하셨을까! 

그동안 집안은 발칵 뒤집혀져 있었다. 당사자인 아버지의 변명은 빼고 배우자인 어머니의 말에 따르면 여든의 아버지에게 여자가 생겼다는 것이다. 늙은 여자의 직감은 예리했고 첩보활동은 명탐정 수준이었다. 이제껏 노부부의 금슬은 온 동네사람들의 부러움이었다. 그런 아버지에게 여자가 생겼다는 사건이다.

엄마는 아빠에게 여자가 생겼으며, 골프를 치러 간다고 하고선 비싼 일식집에서 카드 값이 20만 원 찍혔단다. 이불가게 카드도 찍혔단다. 돈이 손에 들어가면 나오지 않는 알뜰한 엄마의 씀씀이로는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을 일이었다. 꽃뱀이 분명하다 했다. 

아빠는 나이 60이 넘은 여자가 울면서 택시를 타더란다. 부산에서 남편의 언어 폭행에 견디다 못해 자식 집인 진주에 왔다가 산청으로 들어가는 중이었단다. 사연을 들어보니 조금만 옆에서 도와주면 도움이 될 것 같더란다. 전화번호를 주고받고 그래도 남편 그늘이 최고라며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하고 친구처럼 식사도 하고 차도 마시고 했단다. 내 오지랖이 이런 아버지에게서 온 것을 나는 진작 알고 있었다.  

노부부의 전쟁 중에 아빠의 카드와 골프채 그리고 핸드폰은 빼앗겼고, 두 노부부는 서로가 나날이 야위어져 갔다. 그렇다. 이쯤에선 내가 등판할 차례다. 

“자~자~자~ 인자는 같이 살만큼 많이 안 살았나? 이쯤에서 두 사람 도장 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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