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오! 문희'

'오! 문희' 포스터.
'오! 문희' 포스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라는 관용구는 이제는 닳고 닳은 표현이지만, 현실감은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 주변을 둘러보라. 나이를 ‘숫자에 불과하게’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또 그렇게 살면서 이른바 멋까지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자칫 나잇값 못한다거나, 주책맞다거나 철없는 사람처럼 보이기 딱 좋아서 현실의 상황은 ‘나이에 걸맞게’ 사는 게 더 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표현에 어울리는 사람을 찾으려면 현실이 아닌 곳으로 시선을 좀 더 확장할 필요가 있다. 픽션 속 인물이거나 유명인이거나. 

그리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 배우 나문희다. 1941년 생으로 올해 나이 여든의 노배우 나문희는 단지 연기를 잘하는 오랜 경력의 배우가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오롯이 자신이 가진 에너지와 재능으로 필모그래피를 채우고 확장한다. 그래서 그는 여전히 현역인 현재진행형의 배우다. 

<오! 문희>는 뺑소니 사고를 둘러싼 마을 사람들의 유쾌한 소동극이다. 기필코 범인을 잡으려는 보험사 에이스 아들 이희준과 치매에 걸린 어머니 나문희의 호흡이 영화의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토리 중 수사는 약하고 코미디 쪽에 무게를 싣는다. 그러다보니 배우들의 역량에 기댈 수밖에 없는데(사실 따지고 보면 타이틀부터 배우 역량이 강조되는 영화다), 모험 없이 안전하게 깔아놓은 판 위에서 이희준은 뛰고 나문희는 난다. 

액션이나 수사물적 요소가 너무 없다는 불평도 나올 수 있지만 캐릭터 의존성이 강한 대부분의 영화가 그렇듯 몰입을 방해하는 다른 장치는 애초에 관심도 없다. 그게 이 영화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신파의 구덩이로 빠지기 직전에 가족애로 포장을 하고 적재적소에 배치된 코믹한 장치로 지루함을 덜어낸다. 딱히 걸작을 만들 욕심도 그렇다고 망작의 구렁텅이에 빠지기도 싫은 영리한 연출이다. 

<오! 문희>는 가족 영화의 장점을 두루 갖췄다. 지금 이 시기에 유쾌하게 웃고 울다 마음이 따뜻해지며 저도 모르게 주위를 돌아보게 된다. 허술한 플롯이나 스토리를 주제와 캐릭터가 감싼다. 다시 강조하자면 배우 나문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나이를 경쾌하게 뛰어넘는다. 

곧 추석인데 이렇게나 유쾌한 영화를 온 가족이 봤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 수상한 시절이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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